< 차로 빽빽한 BMW 센터 > BMW 차량에 불이 나는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올 들어서만 29번째 발생했다. 3일 서울 시내 한 BMW 서비스센터에 점검을 받으러온 리콜 대상 차량이 빽빽이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 차로 빽빽한 BMW 센터 > BMW 차량에 불이 나는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올 들어서만 29번째 발생했다. 3일 서울 시내 한 BMW 서비스센터에 점검을 받으러온 리콜 대상 차량이 빽빽이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화재 우려로 리콜(결함 시정) 대상이 된 BMW 차량 ‘운행 자제’를 권고하고 나선 것은 소비자의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올 들어 BMW 차량에 불이 나는 사고가 29건이나 발생하자 차량 소유자 사이에선 ‘화차(火車)포비아(공포증)’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가 ‘운행 자제’를 당부했지만 정작 소비자의 불안을 잠재우고, 실질적인 안전을 담보하기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 BMW 차량에 전면적 ‘운행 제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 BMW 화재 위험성 공식화”

사상 첫 '운행자제 권고'에 BMW 車主 분노… 일부선 "운행 금지해야"
국토교통부는 3일 담화문을 통해 BMW 차량의 운행 자제를 권고했다. 손병석 국토부 1차관은 “정부는 BMW 차량 사고 원인을 철저하고 투명하게 조사하겠다”며 “화재 원인을 한 점 의혹 없이 소상하게 밝히고 신속하게 알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조사 과정에서 발견되는 문제는 법적 절차에 따라 엄중하게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BMW의 대응 과정이 적절했는지 함께 점검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지난해 말부터 특정 차종에서 화재가 반복되고 있는 데도 BMW가 제때 대응하지 않아 문제를 키웠다는 일부 소비자 주장을 살펴보겠다는 얘기다.

국토부도 정확한 사고 원인 파악에 시간이 걸린다며 리콜 등의 조치를 미뤄 ‘늑장 대응’ 지적을 받았다. 김경욱 국토부 교통물류실장은 지난 2일 “화재 원인을 파악하는 데는 약 10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말해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운행 자제 권고카드까지 꺼내든 것은 BMW 차량 소유주의 불안과 불만이 수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확산되고 있어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운행 자제 권고는 정부가 해당 차량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을 공식화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상 첫 '운행자제 권고'에 BMW 車主 분노… 일부선 "운행 금지해야"
BMW는 지난달 26일 520d를 포함한 42개 차종 10만6317대를 대상으로 긴급 안전진단과 함께 리콜하겠다고 했지만 논란은 점점 확산되고 있다. 주행 중 화재사고가 왜 잇따르는지, 정확한 사고 원인이 무엇인지 등이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아서다. BMW코리아는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에 문제가 생겨 불이 났다고 설명했지만 정확한 원인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유독 한국에서만 화재가 많은 이유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 김 교수는 “BMW가 국내 환경부 인증을 받는 과정에서 배출가스 규제를 맞추기 위해 EGR 가동과 관련한 소프트웨어를 변경해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BMW “렌터카 지원”

소비자의 반발은 확산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BMW 차량에 대한 운행 제한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운전자와 탑승자뿐만 아니라 도로 위를 함께 달리는 다른 운전자의 안전까지 위협한다는 이유에서다. 강제성 없는 정부의 운행 자제 권고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특정 차량 운행을 제한할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자동차관리법에 대기오염, 천재지변 등에 따른 운행 제한은 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지만 안전 요건에 따른 별도 규정이 없다. 다만 시장·군수·구청장 등이 자기 지역 관할에 있는 차량에 대해 안전운행에 지장이 있다고 인정되면 점검·정비·검사 또는 원상복구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 경우 해당 차량의 운행 정지 명령도 가능하지만 통상 개조차량 등 특정 차량(개인)에 적용하는 규정일 뿐이라는 게 법조계 안팎의 해석이다. 한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는 “(법 조항을) 시장·군수·구청장 등이 개인이 아니라 차량 브랜드를 대상으로 운행정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건 과도한 해석”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환경부가 함께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GR과 관련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는 과정에서 배출가스 인증을 다시 해야 하는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단순 부품 교체가 아니라 리콜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나 변경이 있으면 배출가스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할 수도 있다”며 “환경부가 국토부와 함께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이번 BMW 차량의 EGR 교체 및 소프트웨어 변경은 인증 대상이 아니다”고 밝혔다.

차량 소유주들의 법적 대응도 확산하고 있다. BMW 차주 13명은 이날 법원에 BMW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달 30일 첫 번째 소송에 이은 2차 공동소송이다.

BMW코리아는 이날 정부의 운행 자제 권고에 따라 긴급 안전진단을 받기 전까지 리콜 대상 차량을 운행하지 않는 차량 소유주에게도 렌터카를 무상 지원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전국 주요 렌터카회사와 협의해 10만6000여 명의 안전진단 대상 고객을 위해 필요시 무상으로 렌터카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장창민/심은지/고윤상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