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 근로자가 '사랑의 냉장고'를 열고 아이스크림을 꺼내고 있다. 사진=바이두
야외 근로자가 '사랑의 냉장고'를 열고 아이스크림을 꺼내고 있다. 사진=바이두
"청소부 생활 10년 만에 이런 행사는 처음이에요.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돈이 아까워 시원한 음료수를 사 먹기 힘들었는데, 이렇게 공짜로 주니 너무 좋습니다."

지난달 30일 중국 저장성 원저우. 거리 청소를 마친 환경미화원 갈모 씨는 음료수를 나눠주는 봉사자들로부터 음료수가 무료 제공되는 것인지 거듭 확인한 뒤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갈 씨는 "인근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도 알려야겠다"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연이은 폭염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중국 중앙기상대는 지난 2일 오전 6시에 고온 황색경보를 발령하는 등 최근 전국적으로 20일 연속 고온 경보를 발령했습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 누구보다 힘든 분들은 택배기사나 공사장 근로자, 환경미화원 등 야외에서 일하는 근로자들 아닐까요.

최근 중국에서는 '사랑의 냉장고'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의 냉장고'는 야외 근로자들을 위한 것으로 냉장고 내 음료수와 과일, 간식이 채워져 있다고 합니다. 야외에서 고단하게 일하는 근로자 누구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전국적으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사랑의 냉장고'는 알리바바그룹 물류 계열사 차이냐오와 윈다, 중퉁, 위안퉁, 바이스 등 중국 주요 택배회사가 연합해 지난달 23일부터 시작한 이벤트입니다. 베이징, 상하이, 톈진, 충징 등 전국 주요 18개 도시를 시작으로 445곳의 차이냐오 스테이션(외부에서 고객이 택배를 수령하는 장소)에 '사랑의 냉장고'를 설치했습니다.
[조아라의 소프트 차이나] "청소부 생활 10년 만에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냉장고 앞에는 '무료제공'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쓰여있고, 택배기사 외에도 공사장 근로자, 환경미화원, 교통경찰, 노점상 등 야외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모두 이용 가능한 대상이라고 쓰여 있다. 사진=바이두
냉장고 앞에는 '무료제공'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쓰여있고, 택배기사 외에도 공사장 근로자, 환경미화원, 교통경찰, 노점상 등 야외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모두 이용 가능한 대상이라고 쓰여 있다. 사진=바이두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택배기사들은 얼음 음료와 냉방용품 등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차이냐오 관계자는 "이번 이벤트는 사회 공공 서비스의 일환"이라며 "앞으로 우비와 의약품, 보온용품 등을 구비해 언제든지 택배기사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냉장고 앞에는 '무료제공'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쓰여있고, 택배기사 외에도 공사장 근로자, 환경미화원, 교통경찰, 노점상 등 야외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모두 이용 가능한 대상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들을 위한 격려 문구 '고생합니다'도 눈에 띕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사랑의 냉장고' 채우기에 나섰습니다. 아침 일찍 16개 생수박스를 들고 찾아온 시민도 있고, 식당 주인이 자발적으로 '사랑의 냉장고'를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아이스크림이나 수박을 먹기 좋게 잘라 넣거나, 심지어 맥주를 구해 넣은 시민도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시민들이 근로자들에게 얼음 음료를 권하는 모습 역시 간간이 보입니다. 거창하진 않지만 '역지사지'의 자세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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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노동자들을 위해 알리바바그룹 물류 계열사 차이냐오와 윈다, 중퉁, 위안퉁, 바이스 등 중국 주요 택배회사가 연합해 지난달 23일부터 시작한  '사랑의 냉장고' 이벤트. 사진=바이두
야외 노동자들을 위해 알리바바그룹 물류 계열사 차이냐오와 윈다, 중퉁, 위안퉁, 바이스 등 중국 주요 택배회사가 연합해 지난달 23일부터 시작한 '사랑의 냉장고' 이벤트. 사진=바이두
야외 근로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입니다. 대부분 무더위에 지쳐 있는 상황에서 부담 없이 얼음 음료를 마실 수 있으니 "너무 좋다", "감사하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남에 일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 사회에서 보기 드물게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나와 이해관계도 없는 주위 사람에게 따듯한 손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국 사회도 이제 온정을 자발적으로 나눌 수 있는 '성숙한 시민 사회'로 서서히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닐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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