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노동개혁 → 투자 확대 → 고용 증가 선순환
경기회복 온기 퍼져…저학력층 실업률도 하락
일자리 사정 좋아지자 임금까지 상승세 전환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의 실업률이 계속 하락하며 최저치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글로벌 일자리 호황’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전체 실업률은 물론 상대적으로 높았던 청년실업률과 저학력층 실업률까지 하락세다. 안정적인 경제성장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면서 취약계층으로까지 온기가 퍼져나가고 있다. 대규모 감세와 노동시장 개혁 등의 정책이 기업 투자를 자극하면서 일자리를 늘리는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한국은 딴판이다. 주요 선진국과 달리 일자리 훈풍에서 철저히 소외된 상태다. 신규 일자리 창출 능력이 크게 둔화하면서 청년실업률은 물론 전체 실업률 지표는 악화일로다.
◆선진국 실업률 역대 최저 수준
세계 최대 경제대국 미국은 완전고용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의 지난 6월 실업률은 4.0%로 전달보다 0.2%포인트 올랐지만 2000년 4월(3.8%) 이후 최저 수준을 유지했다. 고졸 이하 학력층의 실업률이 지난해 6월 5.8%에서 올 6월 4.8%로 하락하고 흑인 실업률이 사상 최저인 5%대로 떨어지는 등 전 계층의 일자리 사정이 개선되고 있다. 실업률이 소폭 상승한 것도 더 나은 일자리를 찾으려는 취업자가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일본의 지난 6월 실업률은 2.4%로 1992년 7월(2.1%) 이후 2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집계한 유효구인배율은 지난달 1.62로 44년 만에 최고치였다. 구직자보다 구인자가 1.6배 많다는 의미다. 저출산·고령화로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하면서 취업난이 완화된 측면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경기 회복과 함께 일자리가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재정위기를 맞으면서 실업률이 한때 30% 가까이 됐던 스페인도 최근 실업률이 15% 안팎으로 떨어졌다. 반면 한국은 2013년 3.1%였던 실업률이 지난해 3.7%로 높아지는 등 고용 상황이 계속 나빠지고 있다.
주요 선진국은 청년실업률 하락세도 뚜렷하다. 일본(3.8%) 독일(6.2%) 등의 지난 6월 청년실업률은 한국(9.0%)보다 낮았다. 영국(11.7%)의 청년실업률은 한국보다 높지만 5년 전만 해도 20%가 넘었던 것에 비하면 절반으로 하락했다.
◆美 임금 10년 만에 최대폭 상승
주요 선진국은 구인난을 겪을 만큼 일자리 사정이 좋아지면서 임금이 자연스럽게 오르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지난 2분기 고용비용지수가 전년 동기 대비 2.8% 올랐다고 발표했다. 2008년 3분기(3.1%) 이후 10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오름세다. 고용비용지수는 임금과 복리후생 등 기업이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비용을 나타낸 것이다.
임금이 2.8%, 복리후생비가 2.9% 상승했다. 마켓워치는 “완전고용 수준의 낮은 실업률이 임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기업들이 숙련 근로자 구인난에 시달리면서 더 나은 근로조건을 제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도 고용상황이 좋아지면서 임금이 오르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공식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올해 1분기 시간당 임금은 전년 동기보다 1.8% 올랐다. 근로자 1인당 임금도 같은 기간 1.9% 상승했다.
◆기업 투자→일자리 창출 선순환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려는 정부정책이 선진국의 경제성장과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최고 35%였던 법인세를 올해 1월부터 21%로 낮춘 데 이어 1%포인트 추가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기업을 돕는 정책은 국가를 위한 것”이라며 친기업 정책을 펴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올 들어 세 차례에 걸쳐 인텔 IBM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들을 초청해 프랑스에 투자할 것을 직접 요청하는 ‘세일즈’ 활동을 했다. 국영 철도회사의 종신고용 제도를 폐지하는 등 노동 유연성을 높이고 있다.
일본에서도 기업 투자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정책투자은행 자료를 인용해 일본 기업의 올해 설비투자가 3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는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가 있어야 돈을 벌고 돈을 벌어야 살림을 할 수 있으니 일자리는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일자리는 어디에서 생기는가. 대부분은 기업이 만든다. 그러니 기업 수가 많거나 규모가 커야 하는데, 창업은 어렵고 있는 기업도 규모를 유지하면서 살아남기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이런 환경 속에서 기업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고 이윤을 남기기 위해 기업 활동의 근거지를 신중하게 결정한다. 익숙한 모국을 두고 기업들이 외국으로 진출하는 이유는 기업의 속성인 이윤 추구에 적합한 곳을 찾기 때문이다. 그곳이 소비 시장이든, 낮은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곳이든, 혹은 제3국으로의 진출을 위한 발판이 되는 곳이든 기업 활동에 도움이 되는 곳으로 향하기 마련이다.지난해 세계 전체의 해외 투자는 전년에 비해 20% 이상 감소했다. 특히 외국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이 사업장 신설에 비해 더 크게 줄어 기업이 입지 결정을 신중하게 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는 세계 경제 성장세와 교역량 신장과는 상반되는 결과여서 기업들의 불안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그래도 한국 경제엔 희망이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 상반기에도 우리나라에서 사업하겠다는 외국인 투자의향신고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전 세계적인 해외 투자 감소 추세 속에서도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 신고 금액은 7.6% 늘어났다. 올 상반기에도 전년 동기보다 64.3% 증가한 157억달러를 기록했다.속을 들여다보면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다. 새롭게 사업장을 설립하는 형태의 투자인 그린필드형이 전체 투자의 80%를 넘는다. 기왕에 영업 활동을 하고 있는 국내 기업을 M&A하는 투자는 20% 수준이다. 어느 쪽도 나쁘지는 않지만 고용 창출이라는 면에서 보면 사업장 신설 쪽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더욱 바람직하다. 외국인 투자가 유입되는 산업도 운송용 기계, 전기·전자, 기계장비, 정보통신 등 우리가 강점을 갖고 있는 영역은 물론 핀테크(금융기술)나 플랫폼 구축 등 신산업 생태계 조성과 관련된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결국 한국 경제의 미래에 투자한 것으로 보인다. 신규 투자보다 증액 투자 비중이 더 높다는 것도 좋은 징조다. 이미 한국에서 사업하고 있는 외국인 투자 기업들이 한국 경제의 가능성에 긍정적 평가를 내린 결과여서다.이들 외국인 투자 기업은 한국 경제의 어떤 측면을 높게 평가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한국의 주력 산업인 자동차, 반도체, 전기·전자 분야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클러스터 혹은 글로벌 가치사슬 효과가 큰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과 인접해 있는 지리적 이점, 위기 때마다 보여준 빠른 적응력도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 기술 습득력이 높은 우수한 인력이 많다는 점도 외국인 투자 기업으로서는 솔깃한 요소다. 최근 완화된 지정학적 위험도 향후 남북한 간 경제협력 기대 덕분에 긍정 요인으로 바뀌고 있다.이런 경쟁력과 강점을 어떻게 유지하고 강화할지 고민할 때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외국인 투자 기업과 구직자 간 연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인 투자 기업의 고민 중 하나는 우수 인재를 채용하는 일이다. 그런데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애태우는 구직자들이 많다. 서로가 정보를 공유하지 못해 인력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 기업의 인재 채용을 돕기 위해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일본,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의 고용 상황이 전례 없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 실업률이 사실상 완전고용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구인난을 호소하는 기업이 생길 정도다. 지난 2분기 경제성장률이 0%대로 내려앉으면서 일자리 사정이 좀체 나아지지 않고 있는 한국과 딴판이다.미국의 지난 6월 실업률은 4.0%로 2000년 4월(3.8%) 후 최저 수준을 유지했다.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4.1%(전 분기 대비 연율 환산)까지 치솟을 정도로 경기가 호황인 데 힘입어 일자리가 넘쳐나고 있다.유럽연합(EU)도 실업률이 떨어지고 있다. EU의 6월 실업률은 6.9%로 2008년 5월 이후 최저를 나타냈다. EU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의 6월 실업률은 3.4%까지 하락해 1990년 통일 이후 최저였다. 일본 실업률은 거품 경제가 붕괴된 1990년대 이후 최저인 2%대로 떨어졌다.미국과 일본, 독일 등에서는 구인난을 호소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일본과 독일에선 내국인만으로는 모자라는 일자리를 외국인으로 채우기 위해 법까지 개정해 취업 이민을 장려할 정도다. 감세와 노동시장 개혁 등 친기업 정책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한국은 글로벌 고용 훈풍에서 철저히 소외돼 있다. 정부가 발표한 6월 실업률은 3.7%라지만 청년실업률은 9.0%, 체감실업률은 23.2%로 고용지표는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다. 심각한 것은 기업 투자가 줄면서 신규 일자리 창출 능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점이다.유승호/설지연 기자 usho@hankyung.com
일본의 JR히가시니혼 여객철도 노조 조합원 70%가 집행부의 강경 투쟁에 반발, 조합을 탈퇴했다는 소식이다. 지난 2월 임금협상 과정에서 집행부가 파업을 추진하자 많은 조합원이 “ 노사 대립으로 신뢰를 잃었던 과거 국철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며 대규모로 노조를 떠났다는 것이다.노조 집행부는 연령 직종 관계없이 기본급 정액 인상을 요구하고, 관철되지 않으면 파업하겠다고 경고했다. 1987년 국철 민영화 이후 한 번도 파업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런 결정은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파업하면 회사 신뢰가 무너진다”는 사장의 호소로 파업은 피했지만, 집행부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 젊은 직원들 사이에는 “노조에 넌덜머리가 난다”는 얘기까지 나돈다고 한다.파업을 연례행사처럼 치르는 사업장이 한두 군데가 아닌 한국과 비교하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지금처럼 강경 투쟁 위주의 노조활동이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0% 초반에서 정체돼 있다. OECD 평균(29.1%)의 3분의 1 정도다. 대기업 중심으로 구성된 기존 노조가 외환위기 이후 확대된 서비스업을 끌어안지 못한 데다 양대 노총의 정치투쟁에 따른 피로감 때문이기도 하다.10% 수준의 노조가 전체 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낮은 노조 조직률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크게 벌리는 등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유발해왔다. 그런데도 기득권 노조의 밥그릇 챙기기는 후안무치 수준이다. 민주노총의 한 지부가 노조 탈퇴자들에게 1인당 500만원의 위약금을 내라며 소송을 제기한 게 대표적이다. 기득권 노조의 행패에 넌덜머리를 내는 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사례는 불과 몇 년 후 ‘남의 이야기’가 아닌, ‘한국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