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위 의결 거쳐 임원해임 제안 등 '제한적' 경영참여
사익편취 기업 등 정조준…"장기수익·주주권행사 투명성 높인다"
위탁사 의결권 위임 등은 '원안후퇴'…경영계 "과도개입·시장교란 없어야"
국민연금 '경영참여' 길 열었다…스튜어드십코드 도입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으로 투자 기업의 경영에 참여할 길을 열었다.

일단 '경영참여'는 원칙적으로 배제하지만, 국민이 맡긴 노후자금을 보호하고 장기적인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경우에 따라 임원의 선임·해임·직무정지, 합병·분할, 자산 처분, 회사 해산 등에도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배당뿐만 아니라 기업의 부당지원행위, 경영진 일가 사익 편취행위, 횡령, 배임, 과도한 임원 보수 한도 등도 국민연금의 미래 수익에 영향을 주는 중대 사안으로 판단, 다양한 주주권을 동원해 압박하게 될 전망이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은 '주총 거수기'로 불렸던 국민연금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경영계에서는 경영간섭을 우려하며 거부감을 보여 향후 시행 과정에서 성과를 낼지 주목된다.

◇ "주주권 적극 행사"…노동·시민단체 요구로 '경영참여' 제한적 실시
기금운용위원회는 30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올해 제6차 회의를 열고 격론 끝에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의결했다.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금의 장기수익 제고와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투명성·독립성 제고를 위해 수탁자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코드)을 도입한다"며 "오늘 핵심 쟁점에 대해 위원들이 조금씩 양보하면서 합의를 이뤘다"고 밝혔다.

스튜어드십코드란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가 자금주인인 국민의 이익을 위해, 주주활동 등 수탁자책임을 충실하게 이행토록 하는 행동지침이다.

이날 의결된 도입방안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자본시장법상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임원의 선임·해임 관련 주주제안 등의 주주권을 제한적으로 행사한다.

경영참여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 등 제반 여건이 구비된 후에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는 것이 원칙이나, 그 전이라도 기금운용위원회가 주주가치의 심각한 훼손 등을 이유로 의결한 경우에는 시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뒀다.

현행법은 임원의 선임·해임 또는 직무의 정지, 정관의 변경, 자본금 변경, 합병·분할·분할합병, 주식 교환·이전, 영업 양수·양도, 자산 처분, 회사 해산 등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제안, 위임장대결 등의 행위를 경영참여로 보고 있다.

도입방안을 설계한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이 지분 5∼10% 이상을 보유하면서 단순투자가 아니라 경영참여를 할 때 운용상에 제약을 받는다는 사실을 들어 경영참여에 반대해왔지만 노동·시민단체 추천 위원들의 강력한 요구로 최종안에는 포함됐다.

국민연금은 경영참여의 길을 열어놓은 동시에 기업명 공개, 공개서한 발송, 의결권행사 연계, 의결권행사 사전공시 등 경영참여에 해당하지 않는 주주권은 적극적으로 행사하기로 했다.

시장에 과도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법령이 정비되면 국민연금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운용하는 위탁운용사에 의결권행사를 위임한다.

단 가이드라인을 수립해 선별적으로 의결권을 위탁하고, 위탁사의 의결권 행사가 국민연금의 수익 제고에 역행하면 의결권을 회수하기로 했다.

위탁운용사도 국민연금과 마찬가지로 수탁자 책임활동을 수행하도록 위탁운용사 선정·평가 시에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및 이행 여부에 대해 가점을 부여한다.

국민연금의 주주활동 수행은 기존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9인)를 개편해 만들어지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14명)에서 관리한다.

정부인사를 배제하고 가입자 대표 등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이 위원회는 주주권행사 분과와 책임투자 분과로 구성되며 주주권행사 및 책임투자 관련 주요사항을 검토·결정한다.

◇ 경영계, 의결권 사전공시 등 반발…'경영간섭' 논란 무마가 관건
국민연금은 단계별 주주활동 이행 로드맵도 제시했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합리적 배당정책 수립을 요구하는 대상 기업을 연간 4∼5개에서 8∼10개 수준으로 확대하고 주주대표소송 등 소송 근거를 마련해 시행할 수 있도록 한다.

의결권행사 결정 중 일부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주총 이전에 공시된다.

또, 대한항공 경영진 일가의 일탈행위처럼 예상치 못한 기업가치 훼손이 발생하면 우선 기업과 비공개 대화를 하되,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되면 즉각 기업명 공개, 공개서한 발송을 이행한다.

내년에는 횡령, 배임, 부당지원행위, 경영진의 사익 편취, 임원 보수한도 과다 등 기금수익과 밀접한 분야를 중점관리사안으로 정하고 해당 기업과 비공개 대화하며, 위탁운용사에 의결권행사 위임, 위탁운용사 선정·평가 시 코드 도입 여부 평가 등을 이행한다.

2020년부터는 비공개 대화에도 개선되지 않은 기업에 대해서는 기업명 공개, 공개서한 발송 등 공개적인 주주활동을 시작하고, 관련된 의결권 안건에 대해 반대할 수 있도록 한다.

또 기업에서 요구할 경우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한다.

이를 위해 내년에 이사 후보 인력풀을 만들어놓기로 했다.

[표] 스튜어드십코드 핵심 쟁점 도입안·최종안 비교
┌─────────┬─────────────┬─────────────┐
│쟁점 │도입안 │의결안 │
├─────────┼─────────────┼─────────────┤
│경영참여 │제반여건이 구비된 후 재검 │기금운용위원회가 의결한 경│
│ │토 │우에는 시행 가능 │
├─────────┼─────────────┼─────────────┤
│의결권행사 사전공 │원칙적으로 모든 의결권행사│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사 │
│시 │ 결정사항 주주총회 이전 사│전공개 여부 결정 │
│ │전공시 │ │
├─────────┼─────────────┼─────────────┤
│위탁운용사에 의결 │운용하고 있는 주식만큼 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서 │
│권 부여 │결권 부여 │결정한 주요 사안에 대해서 │
│ │ │만 의결권 위임 │
└─────────┴─────────────┴─────────────┘
이날 위원회는 경영참여, 위탁운용사 의결권 위임,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위탁운용사 가점 부여,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운영방식, 의결권행사 사전공시 등 5개 핵심 쟁점에 대해 3시간 반 동안 토론을 벌였다.

노동·시민사회 추천 위원들은 경영참여를 허용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고, 경영계 추천 위원들은 의결권행사 사전공시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복지부의 원래 도입방안에서 경영참여가 추가됐고, 의결권행사 사전공지는 '원칙적 사전공시'에서 '선택적 사전공시'로 축소됐다.

위탁운용사에 의결권을 모두 부여하는 방안도 일부 부여하는 쪽으로 범위가 줄었다.

이에 대해 책임투자를 강조하는 쪽에서는 "스튜어드십코드를 7월 내로 도입하겠다는 스케쥴에 매몰돼 핵심을 지키지 못했다"면서 "사전공시와 의결권위임 여부를 모두 전문위에 위임할 경우 사사건건 '주관적 판단'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고 의사결정에 외부 입김이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경영계도 즉각적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입장문에서 "경영활동에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시장을 교란하는 일이 없도록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돼야 한다"며 "정부·정치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 기금운용 거버넌스를 개편하는 사회적 논의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영계에서는 600조 이상의 자금을 굴리는 국민연금과 정부가 스튜어드십코드를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악용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거두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주식에 131조5천억원을 투자하고 있으며, 이는 코스피·코스닥 시가총액의 7%에 달한다.
국민연금 '경영참여' 길 열었다…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