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편의점 운영이 어려워지자 신규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중구 한 편의점에서 점주가 물건을 옮기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편의점 운영이 어려워지자 신규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중구 한 편의점에서 점주가 물건을 옮기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국가 경제의 실핏줄이자 서민 경제의 근간인 자영업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관련 종사자 688만 명(무급가족종사자 118만 명 포함)으로 국내 전체 취업자의 25%를 차지하는 자영업이 고꾸라지면서 소득주도 성장을 내건 문재인 정부 들어 고용과 소득 분배는 오히려 악화일로다.

29일 국세청의 국세통계와 소상공인연합회 등에 따르면 올해 폐업하는 자영업자는 사상 처음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자영업 폐업률(1년간 개업 대비 폐업 수)은 2016년 77.8%에서 지난해 87.9%로 높아졌다. 올해는 90%에 육박할 것이란 게 업계 추산이다. 자영업자 10명이 점포를 여는 동안 9명 가까이가 문을 닫는다는 얘기다.

자영업의 '비명'… 올해 100만곳 폐업
자영업 폐업이 급증하는 이유는 경기가 나빠지는 상황에서 비용은 매년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관계자는 “소비 침체에다 근로시간 단축 여파로 손님은 끊기는데 최저임금은 2년 새 30% 가까이 오르게 돼 골목 식당과 편의점들이 버텨낼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자영업자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2.3%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자영업자들이 느끼는 체감경기 역시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7월 향후경기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를 보면 자영업자 지수가 79로 봉급생활자(91)보다 12포인트 낮았다. 한은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8년 7월 이후 자영업자가 봉급생활자에 비해 최대폭으로 뒤처진 수치다. 경기전망 CSI는 6개월 뒤 경기 상황에 대한 판단을 보여주는 지표다. 100 미만이면 부정적으로 응답한 가구가 긍정적으로 응답한 가구보다 많다는 의미다.

“자영업 현장을 둘러보니 정책과 체감지표 간 괴리가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현장 방문을 늘리고 있는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7일 더불어민주당과의 당정협의에서 한 발언이다. 매출 감소와 상가 공실률 등이 생각보다 훨씬 심해 부총리조차 자영업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자영업 위기는 J노믹스(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정책)의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지난 1년 동안 소득주도성장을 내걸며 최저임금을 올해 16.4% 올린 데 이어 내년에도 10.9% 인상하기로 했다. 인건비 상승 부담은 영세 자영업자에겐 직격탄이다.

자영업 위기는 곳곳에서 숫자로 확인된다. 자영업 폐업은 급증하고 남아 있는 자영업자 상황은 악화일로다. 종업원을 내보내고 업주 근로시간을 늘려도 소득 감소를 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최저임금을 벌기도 힘든 상황에서 내년에는 더 큰 파도가 닥칠 전망이다.

◆최저임금도 못 버는 자영업자

영세 자영업자의 소득은 임금근로자 수준을 밑돌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들이 4일 최저임금위에 제출한 ‘2019년도 최저임금 사업별 구분적용안’을 보면 극명히 드러난다. 5인 미만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월 209만원을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근로자(329만원)보다 120만원이나 적은 수치다. 서울지역 동종업계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소상공인의 소득은 도·소매업 78.8, 운수업은 65.4 수준으로 나타났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 소득이 감소하면서 임금근로자와의 격차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자영업의 '비명'… 올해 100만곳 폐업
상당수 자영업자는 최저임금(올해 월 157만원)도 못 버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에 따르면 편의점 점주들의 평균 월수익은 지난해 195만5000원이었으나 올해는 130만2000원으로 33.4% 줄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영세 자영업자가 아르바이트생보다 소득이 줄고 있다”며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반시장적인 정책을 거두고 자영업 생태계를 복원할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일은 더하고… 가족까지 동원

자영업자의 근로 여건은 나빠지고 있다. 신한은행이 지난달 내놓은 ‘2018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를 보면 자영업자의 평균 근로시간은 주 47.3시간으로 대기업(46.6시간), 중소기업(44.6시간) 직장인보다 길었다. 임금 근로자보다 한 달에 최대 11시간 더 일하는 셈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종업원을 두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홀로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지난 1월 166만3000명에서 6월 166만2000명으로 줄어든 데 비해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같은 기간 387만1000명에서 403만9000명으로 늘었다. 영업에 가족을 동원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체에서 일하는 무급가족종사자는 1월 96만5000명에서 6월 118만 명으로 증가했다.

이 같은 추세는 국가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김우형 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의 ‘자영업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 따르면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가 1% 증가하는 것은 5년 동안 경제성장률(실질 국내총생산 기준)을 누적적으로 11.3% 증가시키지만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의 1% 증가는 2.58%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이 더 문제

내년에 최저임금이 추가로 10.9% 인상되면 자영업자의 경제상황은 더욱 급속히 나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제출받은 ‘최저임금 영향률’ 자료를 보면 내년에 시간당 최저임금 8350원(현재 7530원)을 적용받는 전체 임금 근로자 중 98%인 284만1000명이 중소기업·소상공인 사업장에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3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는 2%인 5만8000명에 불과했다.

이근재 한국외식업중앙회 서울시협의회장은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물가까지 오를 전망이어서 자영업자들은 정말 죽을 맛”이라며 “경기가 나빠지고 비용이 더 급증하는 내년에는 상상 이상의 대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임도원/구은서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