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저러다 회사 문 닫는 거 아니야?”

강성희 오텍그룹 회장이 2011년 1월 미국 캐리어의 한국법인(현 오텍캐리어) 경영권을 인수했을 때 회사 안팎의 반응은 대부분 냉소적이었다. 당시 오텍의 매출(620억원)은 오텍캐리어(2395억원)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게다가 오텍캐리어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연속 적자를 내고 있었다. 오텍은 연간 47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견실한 중소기업이었지만 오텍캐리어의 영업적자(2010년 153억원)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회사 안팎에서 쏟아졌다.

강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오텍캐리어는 캐리어 에어컨으로 알려진 가정용과 상업용 에어컨을 제조·판매하는 회사다. 시장 조사를 해보니 기술력이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업 고객을 상대하는 상업용 에어컨 시장의 영업력은 삼성전자 LG전자를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동안 미국 본사가 적자를 메워 주다 보니 경영이 느슨했고 노조는 강성이었습니다. 경영만 제대로 하면 금방 돈을 벌 수 있는 회사가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경영권을 인수할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의 판단이 옳았는지를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텍캐리어의 영업이익은 2012년 3억7000만원에서 지난해 254억5000만원으로 5년 새 69배 급증했다. 같은 기간 연평균 영업이익은 233% 늘었고 매출은 2882억원에서 5608억원으로 두 배가량으로 많아졌다. 글로벌 1, 2위를 다투는 삼성전자 LG전자와 시장에서 싸워서 거둔 성적표다. 오텍캐리어 경영권을 판 미국 대형 방산업체 UTC의 경영진도 이런 성과를 전해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고 한다. UTC 경영진은 2016년 강 회장을 찾아와 UTC 계열사인 오티스 한국법인의 주차관리사업부(현 오텍-오티스파킹시스템)를 인수할 것을 제안했다.

오텍캐리어 어떻게 바꿨나

강 회장이 회사 경영에서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기술 혁신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다. 기술 혁신을 통해 소비자가 만족하면 고객과 이익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게 그의 경영 철학이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강 회장이 오텍캐리어에 쏟아부은 R&D 투자비는 1000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오텍캐리어가 벌어들인 영업이익의 1.5배다.

강 회장이 2000년 창업한 오텍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도 차별화된 기술력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기아자동차 협력사인 서울차체 임원으로 일하다 기아차 부도사태와 외환위기가 터지자 창업에 나섰다. 당시 서울차체의 차량개조사업부를 분할받은 게 현재의 오텍이다. 수입하던 구급차와 장애인용 차량만 국산화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미국 핀란드 독일 등 선진국 구급차를 모두 사와 직접 뜯어보고 연구했습니다. 환자 이송 과정에서 진동을 최소화하는 방진베드, 번쩍거리는 경광등, 하중을 분산하는 에어서스펜션 등을 개발하면서 한국형 엠뷸런스를 선보였습니다.”

오텍캐리어가 2016년 내놓은 ‘에어로(Aero) 18단 에어컨’도 기술 혁신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사용자가 온도와 바람 세기를 조절해야 하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했다. 에어컨이 스스로 실내 환경을 파악해 온도와 바람 세기를 맞추는 방식이다. 매출 1조원 안팎의 중견기업이 세계 1, 2위를 다투는 삼성전자 LG전자의 최신형 에어컨과 겨룰 수 있는 제품을 출시한 것이다.

오텍캐리어는 삼성전자 LG전자와의 정면 승부는 살짝 피했다. 두 회사가 400만~600만원대 프리미엄 제품 시장에 집중할 때 오텍캐리어는 250만원 안팎의 준(準)프리미엄 시장을 집중 공략했다. 중산층이 원하는 가격대였다. ‘삼성과 LG 브랜드’에 익숙한 국내 소비자도 기꺼이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오텍캐리어 에어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2015년 19%에서 지난해 22%로 높아졌다.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

강 회장은 마케팅과 판매 전략에도 능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시장의 핵심을 꿰뚫어 본 뒤 가장 효율적인 전략을 들고나온다. 오텍을 창업하기 전 포드자동차 한국법인 사업부장으로 잠깐 일할 때다. 판매 인력들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니 영어를 잘하는 딜러만 잔뜩 있었다. 영업 능력보다는 미국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중시한 것이다.

강 회장은 마케팅 교육을 강화하면서 강력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차량을 한 대 팔면 주는 인센티브로 150만원을 책정했다. 당시 영업사원 한 달 월급과 비슷했다. 한 달에 20~30대 팔리던 차가 100대 넘게 팔려나갔다.

오텍캐리어가 3년 전부터 홈쇼핑과 온라인 판매망을 강화한 것도 강 회장의 인사이트에서 비롯됐다. 전통적으로 에어컨 판매는 온라인이나 홈쇼핑과 같은 비대면 판매 채널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한번 사면 오랫동안 쓰는 제품인 데다 에어컨 설치 장소와 방식에 대해 영업사원으로부터 상세한 상담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강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홈쇼핑과 온라인쇼핑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이 에어컨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할 것으로 내다봤다. 2014년까지 전무하다시피 하던 오텍캐리어의 온라인과 홈쇼핑 매출은 지난해 전체 매출의 30%까지 늘었다.

■강성희 회장 프로필

△1955년 서울 출생
△1981년 한양대 사학과 졸업
△1982년 서울차체 입사
△1999년 서울차체 영업이사
△2000년 오텍 창업
△2007년 한국터치스크린 인수
△2011년 오텍캐리어 대표이사
△2012년 캐리어냉장 대표이사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