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반도체 탐욕'… "삼성·SK 협력社 무조건 사겠다"
중국이 한국 반도체 장비업체에 대한 전방위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섰다. 단순히 기술자를 몇 명 빼가는 것으로는 ‘반도체 굴기’를 하기에 역부족이라는 판단 아래 기업 설비와 인력을 통째로 사들이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반도체산업의 노하우가 축적된 장비업체들이 중국에 팔리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공정 기술도 함께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23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상당수 반도체 장비업체가 중국 기업이나 지방정부로부터 회사 및 지분 매각, 중국 합작 공장 설립 등의 제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 평택에 있는 반도체 장비업체 A사는 최근 중국 기업으로부터 “최대주주 지분 전량을 800억원에 인수하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A사 대표는 “거액이어서 처음엔 마음이 흔들렸지만 수십 년간 키운 회사를 중국에 넘길 수는 없다고 판단해 거절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반도체 관련 기업 B사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여섯 곳의 중국 기업과 지방정부로부터 인수합병 의사를 전달받았다. B사 관계자는 “매물로 내놓지도 않은 기업을 상대로 사겠다고 제안부터 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홍순재 딜로이트안진 상무는 “올 들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과 거래하는 한국 장비업체를 인수하고 싶다는 중국 기업의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며 “기업 규모는 물론 기술 종류나 수익성은 불문하고 일단 무조건 사고 싶다고 한다”고 전했다.

반도체업계에서는 반도체 굴기에 나선 중국이 기술 확보를 위한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몇몇 기술자에게 의존하는 구조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소재·장비업체를 통째로 사들여 ‘반도체 생태계’를 그대로 옮겨가겠다는 것이다. 기술력이 뛰어난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를 겨냥했다가 기술 유출을 우려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집중 견제를 받자 한국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호황기를 누리고 있는 지금은 괜찮지만 반도체 공급 과잉으로 장비업체의 수익성과 몸값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중국 업체에 회사를 넘기고 싶어 하는 곳이 쏟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