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지난달 15일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경영현안 설명회에서 월성 1호기 조기폐쇄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한경DB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지난달 15일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경영현안 설명회에서 월성 1호기 조기폐쇄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한경DB
한국수력원자력 사외이사 5명이 최근 한수원 지원을 받아 외유성 해외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15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월성 1호기 원자력발전소를 조기폐쇄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인 데다 ‘보상’ 성격도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2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수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등 사외이사 5명이 한수원 돈으로 이달 10일부터 3박5일간 아랍에미리트(UAE)를 다녀왔다. 바라카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조성단지 등을 둘러본다는 명목이었다. 바라카 원전은 한국전력 한수원 두산중공업 등이 지난 3월 준공한 중동지역 첫 원자력발전소다.
 한국수력원자력 사외이사들의 국외 출장 보고서.
한국수력원자력 사외이사들의 국외 출장 보고서.
이번 출장에는 이상직 전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서정해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 권해상 전 주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대사, 김규호 경주대 관광레저학과 교수 등 다른 사외이사 4명과 한수원 기획처 직원 3명이 동행했다. 총 6명인 한수원 사외이사 중에선 강래구 더불어민주당 원외지역위원장협의회장만 빠졌다.

사외이사들은 바라카 원전 방문 직후 아부다비로 이동해 인근 마스다 신재생단지를 살펴본 뒤 14일 귀국했다. 출장 경비는 사외이사들의 비즈니스석 항공권 등을 포함해 총 2731만원이 소요됐다. 사외이사 1인당 404만원씩이다.

월성 1호기는 폐쇄해 놓고… '해외 원전 시찰' 간 한수원 사외이사
한수원 ‘국외 출장계획서’에는 사외이사들의 중동 방문 사유가 ‘원전 건설 이해도 제고 및 현장직원 격려’로 돼 있다. 이에 대해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월성 1호기 조기폐쇄와 함께 한창 부지매입 중이던 천지·대진 등 신규 원전 4기의 건설을 백지화한 뒤 원전 건설의 이해도를 높이려고 해외 출장에 나섰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원전업계의 반응이다. 한수원 사외이사들이 바라카 현장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현지를 찾은 것도 관행과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탈핵 환경운동가인 김해창 교수를 포함한 사외이사들이 원전 조기폐쇄 결정을 내린 직후 외유성 출장에 동참했다는 건 충격적”이라며 “상임이사도 아닌 사외이사들이 해외근무 직원들을 격려한다는 것도 명분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출장에 관광 일정이 포함됐을 가능성도 있다. 정 의원실 관계자는 “한수원 측에 사외이사들의 중동 출장 세부 내역을 제출해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으나 거부됐다”고 말했다.

한수원 사외이사들은 지난달 말 변호사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으로부터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당했다. 정재훈 사장 등 상임이사들과 함께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을 내려 회사에 최소 7000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게 한변 측 주장이다.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월성 1호기는 수명 연장을 위한 설비교체가 완료됐는데도 이사회 결정에 따라 36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반면 선진국에선 설계수명이 30~40년인 원전 설비를 일부 교체해 40~60년간 연장 운영하는 비중이 90% 이상에 달한다.

정 의원은 “한수원 사외이사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새 시설로 바꿔놓은 월성 1호기를 경제성이 없다며 조기폐쇄 결정을 내린 장본인”이라며 “외유성 출장까지 다녀온 사외이사들은 전원 사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