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정한 사회를 위한 재벌개혁의 법적 과제’ 학술대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 위원장,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정한 사회를 위한 재벌개혁의 법적 과제’ 학술대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 위원장,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청와대와 정부가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확대를 위해 대기업을 다독거리는 사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생존기반을 훼손하고 있다”며 강한 톤으로 대기업을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는 민간 기업이 창출한다”며 규제 완화를 시사해 정부와의 소통 기대감이 깃든 기업들은 헷갈려하는 분위기다.

김 위원장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부패방지법학회 주최로 열린 ‘공정한 사회를 위한 재벌개혁의 법적 과제’ 학술대회 축사에서 “대기업의 성장이 더 이상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배분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오히려 대기업은 결실을 얻기 위해 경쟁을 제한하고 독점적인 지배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생존기반을 훼손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경제적 강자가 자기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공정한 경쟁이 아닌, 경제적 약자를 향한 횡포를 통해 얻는 결실은 이제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다”고도 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6월 취임한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 소상공인 간 불공정 경쟁 문제를 지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대기업 행태를 싸잡아 비판하진 않았다. 더구나 김 위원장은 취임 이후 기자회견이나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의 간담회 등에서 수시로 “대기업은 한국 경제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그러던 김 위원장이 ‘횡포’ 등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대기업을 비판하고 나선 데 대해 재계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최근 김 위원장이 현 정부의 지지기반인 진보진영에 대한 공개 비판과 관련해 반발이 일자 다시 선명성을 강조하기 위한 차원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진보진영의 개혁 조급증·경직성 때문에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실패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곧바로 진보진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과거 정부 정책으로 회귀하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비판하고 나서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대기업 오너를 직접 만나 일자리를 당부하면서 친기업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제계와의 소통에 적극 나선다는 기대가 형성된 게 사실”이라며 “이런 마당에 공정위원장이 대기업을 횡포나 일삼는 집단으로 매도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과거보다 센 수위의 발언이긴 하다”면서도 “대기업이 중소기업, 소상공인과 공정하게 경쟁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취지”라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