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국내에서 SK하이닉스를 포함해 총 10건의 인수합병(M&A)을 했다. 이 중 9건은 SK텔레콤, SK네트웍스, SKC 등 자회사들이 인수 주체로 나섰다. 지주사인 SK(주)엔 별도의 사업 수익이 없어 대형 M&A를 추진할 재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SK(주)가 인수 주체로 나선 M&A는 2015년 11월 반도체용 특수가스 제조업체인 OCI머티리얼즈(현 SK머티리얼즈)가 유일했다. 같은 해 8월 SK(주)와 SK C&C가 합병하면서 덩치를 불렸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이런 기업 현실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주사가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 사익편취 등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며 지주사 규제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달 초 발표한 ‘지주사의 수익 구조 및 출자 현황 분석 결과’ 보고서에선 “국내 지주사들이 자회사보다 손자회사와 증손회사 등을 대폭 늘려 지배력을 확대해 왔다”고 ‘콕’ 집어서 비판했다.

재계는 “공정위가 규제 강화를 위해 현실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제도팀장은 “사업을 영위하는 자회사는 지주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무 여력이 커 M&A가 활발한 것”이라며 “기업들이 지주사 규제에 순응한 것을 놓고 난데없이 부작용 얘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정위 보고서 중 지주회사와 일반 기업의 지배구조를 분석한 내용도 “자료를 사실상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공정위는 국내 7개 지주회사와 9개 일반 기업의 지배구조를 분석한 뒤 “지배구조 측면에서 지주회사와 일반 기업은 차이가 없다”며 “오히려 내·외부 감시장치 도입 비율은 지주회사가 일반 기업집단보다 낮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7개 지주회사 그룹엔 한진칼과 부영 등 사외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 등을 꾸리지 않은 지주사들이 포함됐다. 반면 9개 일반 기업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신세계 등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춘 대기업을 대거 포함시켰다. 총수 일가가 지분 80% 이상을 보유한 비상장사인 미래에셋캐피탈도 포함됐다. 비교 대상 16개 기업집단 중 집중투표제를 채택한 유일한 기업이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