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왼쪽)와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가 10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관에서 ‘기업과 혁신 생태계’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왼쪽)와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가 10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관에서 ‘기업과 혁신 생태계’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와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10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관에서 열린 ‘기업과 혁신생태계 특별 대담’에서 2시간 넘게 열띤 토론을 벌였다.

신 교수는 지난 1년간 정부의 경제정책을 ‘F학점’으로 평가했다. 경제민주화 정책으로 인해 생산은 더 어려워졌고 불평등은 심해졌다는 지적이다. 장 교수는 평가를 보류했다. “아직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한 학생을 평가하란 뜻”이라는 이유를 달았다. 장 교수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사촌 동생이다.

◆성장 둔화에 빠진 한국 산업

장 교수는 설비 투자가 급감하면서 한국 산업이 중대한 위기에 놓였다고 경고했다. 그는 “외환위기 전 14~16%에 달하던 국민소득 대비 설비 투자가 이후 7~8% 수준으로 반 토막 났다”며 “정권마다 혁신성장과 혁신생태계를 외치고 있지만 지난 20여 년간 (지원 정책은) 정체됐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외국인 투자자들로 인해 기업들이 장기 투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분기별로 고배당·자사주 매입을 요구하는 외국인 자본이 본격 들어온 이후 최근 10년간 들어온 돈의 3배가 빠져나갔다”며 한국 주식시장을 ‘외국인 주주의 현금자동인출기’에 비유했다.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를 공격했던 ‘엘리엇 사태’에 대해서는 “재벌이 밉다고 국민이 키운 기업을 투기자본에 넘겨선 안 된다”며 “단기자본이 이윤을 많이 내라고 압박하면 대기업은 하청기업과 노동자를 쥐어짤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장 교수는 장기 투자를 유치하는 방법으로 ‘주주 가중의결권’을 제안했다. 예컨대 1년 이하 보유 주식 1주에는 1표, 2년 보유 주식에는 2표, 3년은 5표 등으로 보유 기간에 따라 의결권에 차등을 두자는 얘기다. 신 교수도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며 사내유보금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기업이 혁신하려면 수년간 적자를 감수하고 엄청난 금액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이를 ‘인내자본’이라고 한다”며 “과거엔 은행 대출이 기업의 혁신을 위한 인내자본 역할을 했다면 이젠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초과 이윤을 죄악시하는 지금 분위기에서는 기업가정신이 일어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국민연금 경영 개입 두고 설전

두 교수는 국민연금의 기업 경영 개입 문제를 두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장 교수는 “국민연금 등 공공성을 띤 대규모 투자자가 국민경제적 입장에서 주요 기업의 경영에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국민연금이 독립적으로 투자수익률 전망에 따라 의사 결정을 하지 않고 정부 정책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연금사회주의로 흐르게 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세계적으로 연금이 주요 기업의 10% 가까운 지분을 보유한 곳은 국민연금이 유일하다”며 “국민연금은 개별 기업 지분율을 5% 이내로 낮춰야 한다”고 했다.

국민연금이 지지하고 있는 노동이사제를 두고도 팽팽히 맞섰다. 장 교수는 “독일과 스웨덴처럼 주요 기업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와 지역사회 대표를 이사로 임명해야 한다”며 “기업의 장기적 성장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반기를 들었다. 그는 “노동이사제가 개별 기업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률에 부합하는지 기업별로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