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적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국가다. 화장품업계의 한국콜마와 코스맥스, 명품업계의 시몬느, 의류업계의 한섬, 신발업계의 태광실업과 화승 등은 제조 기술력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들은 제조 기술력만으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들에 비할 수는 없지만 제조 기술력을 갖춘 OEM 전문 중소기업도 많다. 45년 동안 칫솔을 제작한 백남물산, 40년 동안 양말만 만든 준희어패럴 등이다. 27년 된 우산회사 두색하늘도 마찬가지다. 이들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벤처가 ‘단골공장’이다.
기술력 갖춘 OEM 업체와 소비자 연결… 제조업 활기 찾아준 '단골공장'
공장을 찾아내는 게 경쟁력

삼성물산에 다니던 홍한종 대리와 이참 주임은 각자 사업을 해보겠다고 2014년 회사를 그만뒀다. 이것저것 수출도 하고 수입도 했다. 홍 대리는 소비재 수출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높은 유통 마진에 주목했다.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공장과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주자. 그리고 기획의 대가로 유통 마진보다 적은 비용만 받자.’ 후배였던 이 주임에게 함께 사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국내에 기술력은 있지만 마케팅과 기획 능력이 없는 중소 제조업체가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2017년 이들은 단골공장 서비스를 시작했다.

단골공장 홈페이지에선 우산뿐 아니라 칫솔 치약 물티슈 양말 등 각종 생활용품을 구매할 수 있다. 양말과 칫솔은 40년 이상 전문 생산만 해온 준희어패럴과 백남물산이 만든 제품이다. 현재 소비자와 연결해준 공장은 18곳. 올해 안에 50개 품목으로 확대하는 게 이들의 목표다.

단골공장의 경쟁력은 상품 기획력과 공장을 찾아내는 능력에서 나온다. 이참 대표는 자신을 ‘심마니’라고 표현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제조 능력을 갖춘 공장을 찾아내는 일을 산에서 산삼을 캐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획을 하고, 공장을 찾는 것과 달리 이들은 적합한 생산자를 찾아낸 뒤 제품 기획에 나선다. 이들에게 뛰어난 제조 능력과 노하우를 갖춘 중소기업이 운영하는 공장들은 엄청난 자산인 셈이다.

히트 상품의 등장

히트 상품도 나왔다. 케이엠제약의 차콜치약은 단골공장과 9개월여간 제품을 기획했다. 케이엠제약은 이전에 중소기업 중 최초로 대형마트에 자체브랜드(PB) 제품을 납품한 경력이 있다. 홍한종 대표는 “어린이용 치약을 OEM으로 생산하고 있어 위생면에서도 신뢰도가 높았다”며 케이엠제약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단골공장은 치약 거품을 내는 데 쓰이는 계면활성제를 합성화학물질 대신 천연물질로 만들었다. 치약은 전 성분 공개 의무 제품이 아님에도 소비자가 안심하고 고를 수 있도록 전 성분을 공개했다. 이렇게 만든 차콜 치약은 크라우드펀딩 단계에서 목표의 651%를 달성했다.

유통 단계를 없애자 제품이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기간도 줄었다. 중소기업 제이트로닉스가 만드는 물티슈는 펀딩 종료 후 생산에 들어가 진균검사를 마친 뒤 열흘 만에 소비자에게 도착한다. 물티슈를 꺼내는 제품 캡에는 생산일자가 표시돼 있다. 이 대표는 “가장 ‘신선한’ 물티슈를 고객에게 전달하고 있다”며 “위생이 필수인 물티슈를 가장 빠르게 전달한다는 전략이 통해 1만 개 이상이 팔렸다”고 설명했다.

공장-소비자-기획자의 상생

국내 생산만 고집하다 어려움에 빠졌던 우산업체 두색하늘은 단골공장을 만나 정상화에 성공했다. 단골공장은 우산 생산 외길만 걸어온 두색하늘의 스토리와 품질로 마케팅했다. 1회 크라우드펀딩만으로 두색하늘은 1000여 개를 판매하며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이 대표는 “소비자와 중소기업, 단골공장이 함께 이득을 얻는 중소 제조업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소비자는 싼값에 이용하고, 공장은 생산량이 늘어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그는 최저가 마케팅이 아닌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와 생산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단골공장에서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 중 30% 이상이 재구매했다”고 강조했다.

펀딩을 거치지 않고 인기 제품을 상시 구입할 수 있는 점도 단골공장만의 장점이다. 크라우드펀딩으로 제품을 제작할 때 10~20% 여유분을 추가로 생산하기 때문이다. 크라우드펀딩으로 운영되는 다른 플랫폼에서는 펀딩에 참여하지 못하면 제품을 구매하기 어렵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