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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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정책을 추진할 때 사전에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표준절차를 수립한다. 정책을 내놨다가 이해관계자 등의 반발로 혼선을 빚거나 철회되는 사례가 잇따르자 정책 시행에 앞서 각계 의견을 반영해 반대 목소리나 부작용 등을 최소화하라는 얘기다. 정부 부처들은 그러나 이익단체 등이 반발할 가능성이 큰 개혁정책은 사전 의견 수렴 과정에서 걸러지는 반면 의견 수렴이 상대적으로 손쉬운 대중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적인 정책이 늘어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정책보고서에 점검표 첨부해야

행정안전부는 청와대 지시로 ‘정책결정 사전점검표’ 작성지침을 마련 중인 것으로 8일 확인됐다. 각 정부 부처는 작성지침에 따라 이달 내 정책결정 사전점검표를 마련해 시행할 예정이다. 부처 실무자들은 주요 정책보고를 올릴 때 원문 보고자료 외에 이해관계자와 전문가 의견 등을 수렴하고 정책 이력을 담은 사전점검표를 첨부해야 한다. 사전점검표 작성 대상은 장차관 결재문서, 국무회의 차관회의 등 장차관 참석 회의체 안건 등이다. 행안부는 정기적으로 각 부처에서 사전점검표 추진 실적을 보고받기로 했다.
靑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없는 정책 보고 말라"
◆의견 수렴 부족에 잇단 정책 혼선

정책결정 사전점검표 작성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해 5월 출범 후 정책 추진 과정에서 잇따라 이해관계자 반발로 혼선을 빚어왔다.

교육부는 올초 유치원에서 영어 특별활동을 시키려다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반발로 접었다. 교육부는 “영어교육 전반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음을 확인했다”며 사전 의견 수렴이 부족했음을 시인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초까지는 법무부가 가상화폐거래소 폐쇄를 검토하다 투자자 반발에 부딪쳐 방침을 철회했다. 고용노동부는 주 52시간제와 관련해 산업계에서의 혼란이 심해지자 노동시간 단축 시행을 불과 열흘 정도 앞두고 부랴부랴 위반 기업에 최장 6개월의 ‘시정기간’을 부여하기도 했다.

◆‘인기 정책’만 추진되나

정부 부처 사이에서는 “정책 혼선을 줄이고 반대 목소리를 미리 반영하려는 시도는 긍정적”이라면서도 “하지만 이해관계자들이 반발하는 정책이 사전에 걸러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7일 문 대통령이 규제혁신점검회의를 당일 오전 갑작스럽게 취소한 배경도 회의 안건에 포함된 ‘은산 분리 완화’ 방안 등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크게 반발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당시 “이해당사자들이 있어 갈등을 풀기 어려운 혁신 과제는 이해당사자들을 10번, 20번 찾아가서라도 문제를 풀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이해관계자 의견을 정책에 반영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발을 무릅쓰고 그대로 추진해야 할 때도 있다”며 “사전 이해관계자 수렴 과정에서 ‘인기 없는 정책’은 사장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정보 유출 등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또 다른 정부 부처 관계자는 “가상화폐 정책 수립 과정에서 정보 유출로 시장이 출렁였는데 사전점검표가 의무화되면 이 같은 문제가 잦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임도원/이해성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