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귀국 다음날 기자회견 자청해 공식 사과…"모두 내 책임"
"협력업체 대표 자살, 불공정 계약 의혹에 익명채팅방 활발해지자 결심 한 듯"
"대한항공 될라…" 박삼구 회장 '기내식 대란' 서둘러 진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최근 문제가 된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에 대해 4일 공식 사과했다.

기내식 공급 차질로 아시아나 국제선 지연 출발이 속출하고, 기내식 없는 '노밀'(No Meal) 운항이 계속되면서 승객과 여론의 비난이 확산하자 기자회견을 자청해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인 것이다.

이날은 '기내식 대란' 나흘째이자 박 회장이 중국 출장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바로 다음 날이다.

업계에서는 아시아나 '기내식 대란'이 단순한 기내식 공급 문제를 넘어 '불공정 계약', '오너 갑질' 등 사회문제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자 박 회장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애초 그룹 내에서는 박 회장이 아닌 김수천 사장의 사과 수준에서 이번 사태를 갈음하려 했지만, 이날 오후 박 회장이 직접 나서 사과하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급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는 이날 금호그룹 직원 2천여명이 카카오톡 익명 채팅방에 모여 이번 사태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오는 금요일 저녁 박 회장의 비리를 폭로하는 집회를 열기로 한 것이 알려지며 더욱 강화된 것으로 관측된다.

비판의 화살이 박 회장을 정조준하자 시간을 두고 여론을 살피며 사태를 관망하기보다 여론의 뭇매를 맞더라도 자청해서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날 아시아나 직원들이 개설한 익명 채팅방은 박 회장과 금호 측에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 등 한진그룹 총수 일가가 지금까지 각종 비위와 관련해 수사를 받고 정부기관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는 것은 익명 채팅방 제보가 시작이었다"며 "익명 채팅방을 통해 '기내식 파문'이 대한항공 경우처럼 총수 일가의 문제를 들춰내고 퇴진 요구까지 이어지는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침묵하지 말자'라는 이름을 붙인 금호그룹 직원들의 익명 채팅방에는 이날 각종 의혹이 봇물처럼 올라왔다.

지난 2일 아시아나 기내식 재하청 협력업체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시아나가 협력업체와 맺은 '불공정 계약'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부터 '기내식 대란'의 근본 원인이 된 기내식 공급업체 변경에 금호그룹의 1천600억원 규모 투자금 유치 건이 걸려있었다는 문제 제기 등이 잇따랐다.

이런 주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갑을' 관계를 이용한 불공정 거래, 재벌 그룹의 계열사 부당지원 등 폭발력 있는 이슈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것들로 평가된다.

금호그룹 직원들은 6일 저녁 광화문에서 여는 첫 집회에 재하청 협력업체 대표의 죽음을 추모하는 의미로 검은색 옷을 입고 국화꽃을 들고 참석할 계획이다.

관련 사안을 다룬 기사나 댓글,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이런 의혹이 확산하면서 여론도 점차 '기내식 문제'에서 금호그룹 경영과 관련한 구조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해서인지 박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납작 엎드린 자세를 보였다.

승객과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은 물론 이번 사태로 현장에서 직원들이 고생하는 데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전적으로 제 책임이다.

변명할 생각이 없다"고 고개를 숙였다.

기내식 납품 재하청 협력업체 대표의 죽음에 대해서도 유족들에게 깊이 사과한다며 조의를 표했다.

아시아나는 재하청 협력업체 대표 사망 직후 사과하거나 책임을 느낀다는 정도의 입장 표명도 없었다.

아시아나가 직접 기내식 공급을 맺은 업체가 아닌 재하청 업체 대표여서 아시아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여론은 이런 아시아나 태도에 비판적이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한진 총수 일가는 막말, 욕설, 폭력을 휘두르며 갑질을 해댔지만, 사람이 죽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아시아나 기내식 문제로 인해 귀한 목숨이 희생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박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 내내 자신의 책임을 강조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비교적 성실히 답했다.

기자회견에서 사회자가 "시간 관계상 질문을 몇 개만 더 받고 끝내겠다"고 하자 "아니다.

어떤 질문이건 다 받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오늘 사과 기자회견을 통해 비판 여론이 얼마나 잦아들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책임을 미루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고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은 잘한 판단 같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