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자국 사막 위에 짓는 원자력발전소의 예비사업자로 한국 등 5개국을 모두 포함시키자 국내 원전업계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첫 관문인 쇼트리스트에는 올랐지만 이전과 달라진 게 없어서다. 사우디가 본 계약자를 선정하는 내년까지 예비사업자 간 치열한 물밑 협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 컨소시엄 구성 등 국가 간 합종연횡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사우디, 협상 우위 포석

사우디가 추진하는 원전 프로젝트는 자국 내에 1.4GW급 원자로 2기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풍부한 석유 자원을 갖고 있지만 미래 화석연료가 부족해질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총사업비는 예단하기 어렵다. 최소 120억달러에 달할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한전이 주 계약자로 참여했던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은 같은 급 원자로 4기를 짓는 데 186억달러로 계약했다. 당시 가격으로 1기에 46억5000만달러였던 셈이다.

'사우디 원전' 예상 깨고 5國 모두 후보… "한국, 수주 낙관 못해"
사우디가 한국 등 5개국을 모두 쇼트리스트에 올린 건 마지막까지 사업자 간 경쟁을 유도하려는 포석이란 분석이다. 가격이나 부대조건 등에서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전략이란 얘기다. 한전 관계자는 “사우디가 정치·외교적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본다”며 “기술적 우위를 강조해온 한국으로선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말했다.

◆각국 합종연횡 치열할 듯

이번 사우디 원전 사업에 응찰했던 곳은 한전 컨소시엄 외에 미국 웨스팅하우스, 프랑스 EDF(아레바), 중국 CGN, 러시아 로사톰 등이 있다. 일찌감치 한국이 여전히 가장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무엇보다 사우디와 비슷한 사막 환경인 UAE에서 원전을 성공적으로 건설한 경험이 있어서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UAE 사막에 총 4기의 원전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8100번에 달하는 시행착오를 겪었다”며 “사우디에 이런 점을 적극 설명했더니 상당히 호의적으로 반응하더라”고 말했다.

다른 나라도 협상력을 극대화할 ‘무기’를 갖고 있다. 미국은 국제정치력에서 앞서 있다. 원자력 협정 요건을 완화해 우라늄 농축을 허용하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이란처럼 핵 보유국이 되기를 바라는 사우디로선 매력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가격 경쟁력을 갖췄으며 프랑스는 해외에서 원전을 다수 건설한 경험이 있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사우디에 원전을 수출하기 위해선 UAE 사례처럼 미국과 사우디 간 원자력협정이 먼저 체결돼야 한다”며 “한국과 미국이 손잡고 원전 수주를 공동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부 “총력 지원할 것”

정부는 최종 수주하기 위해 총력 지원하기로 했다. 탈(脫)원전 정책에 따라 고사 위기에 놓인 국내 원전업계엔 사우디 원전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이 내년 사우디 원전을 따내면 완공 시점은 2025년 전후가 될 전망이다. 다만 상업운전 시기는 조금 더 늦춰질 수 있다. UAE에 수출한 바라카 원전은 2011년 착공해 올 3월 완공됐지만 현지 운영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가동이 내년으로 연기됐다.

사우디는 향후 원전 10기 이상을 추가 발주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40년까지 총 17GW 용량의 전력을 추가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현재 ‘제로’인 원전 비중을 15%까지 높이기로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사우디에서 첫 원전을 수주하는 나라가 나머지도 따낼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에서 총력 지원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재길/성수영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