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가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전날 청와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규제혁신 점검회의가 전격 취소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가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전날 청와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규제혁신 점검회의가 전격 취소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기로 했던 규제혁신 점검회의가 27일 전격 취소된 뒤 이틀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 배경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25일 각 부처로부터 회의 내용을 사전 보고받고 이틀 동안 별다른 지적이 없다가 당일 회의 직전에 ‘미흡하다’며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보고 내용이 전해진 뒤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해 규제 혁신 논의를 차단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29일 각 부처에 따르면 규제혁신 점검회의 주무 부처인 국무조정실은 회의에서 발표할 예정이던 각종 혁신 점검 결과와 향후 혁신 추진 방안 등에 대해 25일 이 총리에게 사전 브리핑을 했다.

금융위원회와 행정안전부도 이날 각각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완화 방안, 개인 정보 활용 범위 확대 방안에 대해 총리실과 청와대에 보고했고 이 총리와 문 대통령은 ‘문제가 없다’고 회의 진행을 지시했다. 특히 이 총리는 보고 내용에 상당히 만족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건 보고를 맡았던 한 부처의 관계자는 “규제 혁신 방안을 발표할 때마다 더 강도 높은 수준을 요구하던 이 총리가 ‘이번에는 노력의 흔적이 엿보인다’며 칭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이 총리는 행사 당일 오전에 전화로 협의를 거친 뒤 갑작스럽게 회의 연기를 결정했다. 이 총리가 건의한 데 따른 것이라는 게 정부의 공식적인 설명이지만 관련 부처들은 사실상 청와대가 결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 관계자가 이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이 매우 미흡하다고 역정을 냈다’는 말을 했고, 이 총리가 고민 끝에 회의 취소를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혁신에 대해 눈높이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이 총리가 만족감을 표했는데 대통령이 미흡하다고 역정을 냈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며 “어떤 부분이 미흡한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적도 없어 부처들이 의미를 파악하느라 분주하다”고 전했다. 다른 부처의 관계자는 “회의를 연기한다는데 언제까지 다시 준비하라거나 어떤 부분을 보강하라는 얘기가 없어 일단 원점부터 재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처 일각에서는 규제개혁에 반대해온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로부터 압박을 받은 청와대 참모진이 ‘청와대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며 대통령에게 회의 취소를 건의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특히 참여연대가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냈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부의 최대 실세 그룹인 데다 이번 회의의 핵심 논의 주제였던 은산분리 완화와 개인정보의 빅데이터 활용 등에 크게 반발해왔기 때문이다. 청와대도 회의 취소 이유를 브리핑하면서 “갈등을 풀기 어려운 과제는 이해 당사자들을 열 번, 스무 번 찾아가서라도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지시를 언급해 이런 정황을 뒷받침했다.

참여연대는 회의 취소 이튿날인 28일엔 논평을 통해 “정부가 규제혁신 점검회의로 추진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은산분리 완화 등은 관료와 업계의 요구일 뿐이며, 과거 보수 정권의 경제정책을 이어가는 일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김일규/박신영/강경민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