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생수 50종, 뭘 사지?… 상품 수 많을수록 '선택장애'
인천 영종도 을왕리해변 인근의 한 식당은 메뉴판이 없다. 메뉴가 쌈밥 하나이기 때문이다. 손님이 가면 몇 명인지만 묻는다. 그런데도 주말엔 한 시간가량 기다려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다. 이 정도까진 아니어도 맛집으로 불리는 식당 대부분은 메뉴가 단순한 편이다.

유통업계에도 ‘간편 메뉴’를 추구하는 회사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이마트의 창고형 할인매장 트레이더스, 코스트코, 롯데하이마트 옴니스토어 등이 그렇다. 트레이더스는 생수 브랜드를 2~3개만 가져다 놓는다. 50~60개씩 있는 대형마트와 다르다. 그래도 점포당 생수 매출은 트레이더스가 더 많다. 롯데하이마트 옴니스토어는 상품 수를 기존 점포 대비 30~40% 줄이자 매출이 확 뛰었다. ‘상품 수가 많을수록 매출이 높아질 것’이란 일반 상식과는 다른 것이다.

상품 수가 적은 게 구매율을 높인다는 실험도 있다. 시나 아이엔거·마크 레퍼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팀이 2000년 한 대형마트에 두 개의 잼 판매대를 설치했다. 한쪽 매대에는 24개 종류의 잼을 진열해 놓고, 다른 쪽엔 6개 종류만 놨다. 사람들은 6 대 4 비율로 상품 수가 많은 매대를 찾았다. 하지만 구매율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24개 잼이 있는 매대의 구매율은 2% 미만인 데 비해, 6개 잼이 있는 매대는 12%에 달했다. 고를 게 많다고 좋은 게 아니란 얘기다.

구글은 이 같은 실험 결과에 반하는 일을 했다가 실패를 맛봤다. 구글은 사업 초기 검색 결과를 한 화면에 최대한 많이 보여주려 애썼다. 설문을 해보면 ‘검색 결과가 많이 보일수록 좋다’고 답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한 화면에 검색 결과를 세 배로 늘리자 트래픽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성적으론 많은 게 좋은 듯 보이지만, 사람들은 너무 많은 검색 결과가 나오면 뭘 클릭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너무 많은 ‘선택지’는 소비자의 결정장애를 불러왔다.

기업이 소비자의 선택 폭을 줄이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우선 잘 팔릴 게 뭔지 예측해야 한다. 예상이 맞으면 ‘대박’이지만 틀리면 ‘쪽박’이다. 한 대형마트 상품기획자(MD)는 “어지간한 자신감 없인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MD의 ‘실력’이 더 중요해졌다. 이제 유통회사들은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상품을 대신 골라주는 단계까지 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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