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상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권종호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장(맨 오른쪽)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상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권종호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장(맨 오른쪽)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정부 압박에 국내 기업들은 순환출자 고리를 지난 5년 동안 9만7658개에서 12개로 줄였습니다. 그간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문제 삼아 경영권 방어장치 도입을 막아온 만큼 이제라도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권종호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과 한국경제신문사, 김종석·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 주최로 21일 국회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상법개정 방향’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법무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민주화 법안이 통과되면 적은 지분으로 회사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어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참석자들은 “주요 선진국이 도입한 포이즌필 등 경영권 안정을 위한 제도를 정부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헤지펀드 이사회 장악 가속화”

법무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민주화 법안은 △자산 규모 2조원 이상 상장사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 의무화 등이다. 연내 국회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그러나 이들 법안이 소액주주 보호란 본래 취지보다 투기자본의 활동 영역을 넓혀주는 등 부작용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이날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권종호 교수는 구체적인 사례로 다중대표소송제를 꼽았다. 모회사 주식으로 모회사와 계열사 경영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그는 “모회사의 일부 지분만 갖고 있으면 자회사·손자회사 등의 경영자와 잇단 소송전을 벌이고 이를 통해 사익을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집중투표 의무화는 이사 선출 시 1주 1표가 아니라 선출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정책본부장은 “대주주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해 별도로 감사위원을 선임(감사위원 분리선출)하게 되면 경영진 선임에서 대주주의 영향력이 대폭 축소된다”며 “헤지펀드와 연관된 소수주주가 감사위원으로 들어오면 투기자본의 이사회 장악 빈도는 크게 늘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경영권 방어장치 반대”

참석자들은 현대자동차, 삼성 등 국내 굴지 기업들이 엘리엇매니지먼트 같은 글로벌 ‘기업 사냥꾼’의 표적이 돼 있는 만큼 경영권 방어를 도울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차등의결권(한 개 주식에 여러 개의 의결권을 인정하는 제도)과 포이즌필 등이 구체적 대안으로 거론됐다. 김지평 김앤장 변호사는 “현재와 같이 국내 기업들이 자기주식 취득이나 계열사 간 상호 출자 등으로 경영권을 방어할 경우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든다”고 말했다.

계열사 간 순환출자가 빠르게 해소되고 있는 만큼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을 막을 명분이 사라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권 교수는 “순환출자로 경영권을 유지하는 관행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며 “정부도 기업에 숨통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박성훈 법무부 상사법무과장은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그는 “차등의결권은 1주 1의결권의 기본 원칙에 위배되고, 포이즌필은 무능한 경영진의 교체 등이 어렵다”며 “충분히 검토 하겠지만 현재로선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석 의원은 “경제민주화 법안이 도입되더라도 최소한의 경영권 방어장치는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이즌필

poison pill=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있을 때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싼 가격에 지분을 인수할 수 있도록 권리를 부여해 경영권을 방어하도록 하는 제도.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