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시장에 등장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정보기술(IT)을 활용해 당일 소비자에게 배송해주거나 연구개발(R&D)을 통해 가장 맛있는 고기를 제공하겠다는 창업자들이 설립한 회사다. 고기 시장에 형성된 ‘신선도 중시’ ‘소량화 확대’ ‘숙성 선호’라는 트렌드가 이들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미국처럼 대안 고기, 식물성 고기 등을 내놓겠다는 스타트업도 곧 등장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신선·소량·숙성'… 고기 시장 트렌드 이끄는 축산 스타트업
유통 시간을 줄여 신선함 보장

고기 소비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맛과 신선도다. 유통 과정이 길면 변질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육각은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등장한 스타트업이다.

김재연 정육각 대표는 “전국의 도축장을 돌아다니면서 ‘돼지고기는 도축하고 4일 정도 지나서 가장 맛이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창업 아이디어는 여기서 나왔다. 자체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돼지고기는 도축 4일 안의 것만 취급한다. 소고기와 닭고기도 농장과 계약해 생산과 유통 시간을 줄였다. 우유와 계란은 오전에 주문하면 당일 생산한 제품을 배달해준다.

전통적인 도축장~육가공업체~도매업체~정육점으로 이어지는 유통은 아무리 빨라도 1주일이 걸리기 때문에 신선도와 맛을 보장할 수 없다고 한다. 정육각은 유통 과정을 줄이기 위해 직접 축산 농가와 계약하고, 육가공 시설을 더 갖췄다. 인터넷으로 소비자가 주문하면 그때부터 제품을 포장해 배달 준비에 들어간다. 온라인 주문부터 가공, 포장, 배송의 모든 과정이 IT를 활용한 자동화 시스템으로 돌아간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고기도 R&D가 필요하다

이종근 육그램 대표는 정육점과 고깃집을 연결하는 기업 간 거래(B2B) 사업에서 가능성을 보고 뛰어들었다. 기존 유통망에선 고깃집이 정육점에 주문을 하면 빨라도 다음날 배송된다. 작은 식당에선 재료가 다 떨어지면 장사를 할 수 없다. 최소 주문 단위는 20㎏ 정도여서 매출이 적은 식당은 재고 부담도 상당했다.

육그램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미트퀵’ 서비스를 내놨다. 식당에서 당일 사용할 고기(5~20㎏)를 주문하면 오토바이와 소형 화물차 등으로 당일 배송해준다. 물류 스타트업 바로고, 벤디츠 등과 손잡고 다음달 1일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다.

이 대표는 “1인 가구 증가와 함께 식당 규모도 점차 작아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작은 식당에서 필요한 양만 주문해 신선한 음식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언미트는 “돼지고기에도 R&D가 필요하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온라인 정육 전문몰인 ‘탐육’과 삼겹살 전문점인 ‘숙달돼지’에서 판매하는 고기는 자체 연구소인 미트랩(MEATLAB)을 거친다. 축산전문가와 요리사, 숙성전문가 등이 경기 남양주 육가공 공장에 모여 돼지고기 맛과 숙성을 연구한다.

박경준 대표는 2011년 연기가 나지 않는 가정용 구이기를 개발하다가 우연히 고깃집을 차리게 됐다. 높은 생산 비용 때문에 구이기 납품에 어려움을 겪다가 서울 문래동 철공단지 한쪽에서 직접 고기를 팔게 됐다. ‘연기가 나지 않는 구이기’로 구운 고기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아이언미트 가맹점은 올해 20여 개로 늘어났다.

박 대표는 “대학 재학 시절부터 10여 년간 해온 제조 벤처는 R&D가 핵심이었다”며 “돼지고기 맛도 끊임없는 연구로 향상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조 고기 만드는 미국 스타트업

미국 고기 분야 스타트업은 ‘대안 고기’ 연구까지 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2017년 1700만달러(약 190억원)를 투자한 멤피스미트(Memphis Meats)가 대표적이다. 멤피스미트는 동물의 자기복제 세포를 실험실에서 배양해 인공 고기를 만든다. 비욘드미트(Beyond Meat)라는 미국 스타트업은 콩과 버섯, 호박 등 식물성 재료만으로 ‘식물성 고기’를 만든다. 2016년 출시한 비욘드 버거는 미국에서만 1100만 개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축산업에 과학기술을 접목하면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조미진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 요구가 늘어나면서 단백질 공급원으로서의 축산업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1인당 축산물 소비량은 2010년 117.3㎏에서 2016년 144.6㎏으로 대폭 늘었다. 국내 축산 생산액(2015년 기준)은 19조2116억원으로 농업 생산액의 20%에 달한다.

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