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자력발전소 폐기를 공언했던 나라들이 탈원전 속도를 늦추고 있다. 원전만큼 효율성 높은 전력 생산설비를 찾기가 쉽지 않아서다.

'脫원전' 선언했던 국가들 속속 '親원전' 복귀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원전을 운영하는 세계 31개국 중 지난해 원전 발전 비중이 2010년 대비 증가한 곳은 54.8%(17개국)에 달했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 원전 의존도를 일시적으로 낮췄던 나라들이 속속 ‘친(親)원전’으로 복귀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의 지난해 원전 비중은 19.3%로, 2010년(15.7%)보다 3.6%포인트 증가했다. 북해 유전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신규 원전 13기를 추가로 지어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다. 한국전력이 사업 참여를 검토 중인 무어사이드 원전도 여기에 포함된다. 섬나라인 만큼 동유럽의 값싼 전기를 구매하기 어렵다는 게 영국의 판단이다.

원전 의존율이 70%를 넘는 ‘원자력 강국’ 프랑스는 그 비중을 2025년까지 50%로 낮추려다 작년 말 계획을 수정했다. 목표 달성 시기를 5~10년 늦췄다. 국민의 전기료 인상 부담을 감안해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신재생에너지는 출력이 불안정해 원전을 대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자력 전기를 생산하는 미국은 지금도 원전 2기를 건설하고 있다. 셰일오일 덕분에 가스 발전의 가격 경쟁력이 더 높지만 ‘안정성’을 이유로 원전 건설 보조금까지 지급하고 있다. 미국은 가동하고 있는 99기의 원전 중 86기에 대해선 60년까지 연장 운영하도록 승인을 내줬다.

주로 석탄 화력에 의존하는 중국은 가동 중인 39기 외에 추가로 19기의 원전을 짓고 있다. 2030년까지 원전으로 150GW의 전력을 생산하는 게 목표다. 1.4GW급인 한국의 신형 원전(APR1400)을 107개 돌려야 하는 규모다. ‘자원 부국’인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도 원전 신설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의 당사자인 일본 역시 2015년 ‘원전 제로’ 정책을 폐기했다. 2014년 전국 원전의 시동을 아예 꺼버린 일본은 현재 9기를 다시 돌리고 있다. 전기료 급등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1980년 세계 최초로 탈원전을 선언한 스웨덴은 일찌감치 원전의 효율성을 인정했다. 이 나라의 원전 발전 비중은 40% 선이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세계에서 진정한 탈원전을 실행하는 곳은 원전건설산업이 아예 없는 독일뿐”이라며 “원자력의 경제성과 기술 수출 가능성 등을 감안할 때 원전의 맥을 끊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