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휴대폰, TV업계에서 세계 1위 경쟁력을 보유한 삼성전자가 검색과 동영상 등 소프트웨어업계 강자인 구글과 인공지능(AI) 시장에서 ‘진검 승부’를 벌인다. 아이폰이라는 혁신적인 제품을 들고나와 스마트폰 시장을 이뤄낸 애플에 대항하기 위해 10년 전 삼성전자와 구글이 ‘안드로이드 혈맹’을 맺은 이후 사실상 처음 맞는 경쟁 구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AI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든 삼성전자가 단기간에 선두업체를 쫓아가기 위해 도전장을 던졌지만 현시점에서는 결과를 낙관하기가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 AI 승부수… 구글·아마존에 의존 않고 '빅스비'로 홀로서기
구글·아마존과 협력 대신 경쟁

1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경영진은 지난해 말부터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AI 선두업체들과 시장에서 경쟁한다는 밑그림을 그렸으며 세부 실행 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핵심 경영진이 전략 컨설팅업체 등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반년 이상 검토를 거쳐 내린 결론이다. 당시는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페이스북, 애플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앞으로 전개될 AI 시장을 놓고 ‘합종연횡’을 추진하던 시기였다.

삼성전자는 한때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IT 업체들과 AI 사업을 협력하는 방안을 깊이 있게 검토했다. 삼성전자의 음성 AI 서비스인 ‘빅스비’가 낮은 인식률(말을 알아듣는 수준) 등으로 시장에서 고전한 탓이다. 구글, 아마존 등도 삼성전자의 하드웨어 경쟁력을 탐냈다는 후문이다. 삼성전자가 매년 판매하는 휴대폰, TV, 냉장고, 세탁기 등 완제품들이 AI 플랫폼을 확산시킬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이런 완제품을 매년 5억 대가량 세계에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팔린 AI 스피커(2400만 대)의 20배가 넘는 규모다.

하지만 삼성전자 경영진은 ‘안전한’ 협력 대신 모험이 뒤따르는 경쟁을 택했다. AI 경쟁력이 휴대폰, TV, 가전 등 삼성전자 주력 제품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기술이 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자사가 판매하는 가전제품에는 구글, 아마존 등 타사의 음성 AI 플랫폼을 장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삼성전자 제품엔 빅스비만 설치한다는 전략이다. 소니, LG전자, 중국 TCL 등 글로벌 IT 제조사들이 구글 또는 아마존의 AI 스피커를 장착한 TV와 휴대폰, 가전제품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것과 대비된다.

다만 삼성전자는 다른 제품과 달리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시리즈 등 전략 스마트폰에 구글의 음성 AI 플랫폼인 구글 어시스턴트를 기본으로 채택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이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에 의존하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AI 업체들과 비교해 연구개발(R&D) 인력의 경쟁력이 뒤처진다는 진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조직개편 때 휴대폰과 가전 사업으로 나뉘어 있던 세트(완제품) 부문의 선행 연구 조직을 ‘삼성리서치’로 통합한 배경이다. 올 들어 삼성전자가 AI 인력을 공격적으로 영입하고 글로벌 AI 연구센터를 확대하는 것도 새로 바뀐 AI 전략의 하나라는 설명이다.

소프트웨어냐 하드웨어냐

글로벌 IT업계는 삼성전자와 구글이 AI 시장에서 벌일 승부의 결과와 파장에 주목하고 있다. 세계 1위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갖춘 구글과 세계 1위 하드웨어 제조업체인 삼성전자의 경쟁이 본격화됐다고 볼 수 있어서다. 구글은 지난해 미국 검색 시장의 63%, 동영상 광고 시장의 20%를 차지했다. 구글의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의 시장 점유율은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80%를 웃돈다.

세계 IT 시장의 판도 변화가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을 부추긴다는 분석도 나온다. 구글은 소프트웨어 시장의 독보적인 경쟁력을 기반으로 사물인터넷(IoT) 기기, 가상현실(VR), AI 스피커, 자율주행 자동차 등 신산업에 활발하게 뛰어들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이거나 향후 먹거리가 될 산업이다.

온라인 유통의 강자인 아마존도 2014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AI 스피커를 선보이면서 삼성전자의 잠재적인 경쟁사로 떠올랐다. 삼성전자 고위관계자는 “AI 시장의 주도권을 거머쥔 기업이 관련 시장의 이윤을 대부분 독식할 가능성이 크다”며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