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제일제당은 이달 초 가정간편식(HMR) 전문매장 ‘올리브마켓’을 열면서 진땀을 뺐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오는 9월께 이마트의 HMR 브랜드 ‘피코크’ 전문매장을 열겠다고 공언하면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CJ 측이 국내 1호 HMR 전문점 타이틀을 이마트에 뺏길까봐 이마트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 적잖은 신경을 쓴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대형마트 1위 이마트가 피코크로 HMR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자 식품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마트에서만 파는 자체상표(PB)였지만, 앞으로는 다른 유통매장과 해외 주요 채널에서도 판매되는 ‘프리미엄 식품브랜드’로 만들겠다는 게 정 부회장의 의지다.
이마트 밖 눈 돌리는 피코크… 식품업계 긴장
◆피코크, ‘이마트 울타리’ 넘는다

피코크의 작년 매출은 2400억원이었다. 올해는 목표치 2700억원을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2013년 매출 340억원의 8배 수준이다. CJ제일제당과 오뚜기 등 HMR 업계 1, 2위 업체를 제외하면 HMR 부문에서 웬만한 식품회사와 견줄 정도로 몸집이 커졌다.

냉장 국, 탕, 찌개로 시작한 피코크는 지역 맛집과 협업하면서 존재감을 키웠다. 홍대 짬뽕맛집, 초마짬뽕과 협업해 개발한 ‘초마짬뽕’ 등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별도의 HMR 브랜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디저트와 해외 식품, 일반 가공식품 등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현재 매출 1위 제품은 이탈리아에서 직접 제조해 가져오는 ‘티라미수 케이크’다.

지난해 8월엔 상온 HMR로 영역을 넓혔다. 상온에서 장기간 보관하려면 그에 맞는 포장 기술을 갖춰야 한다. 이런 점에서 피코크의 상온 HMR 시장 진출은 이마트의 제품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13년 200여 종이었던 피코크 상품 수도 지난해 말 1000종으로 늘었다.

업계는 올가을 문을 열 전문점이 피코크의 도약 여부를 판가름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들이 피코크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마트가 아니라 전문점을 찾을지가 관건이다. 피코크 전문점은 즉석에서 바로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공간도 갖출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트 밖 눈 돌리는 피코크… 식품업계 긴장
◆정용진 부회장의 전략사업

이마트는 피코크를 육성하기 위해 조직 정비와 해외 진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말 CJ제일제당 출신 곽정우 상무를 피코크 책임자로 임명한 게 대표적이다. 곽 상무는 CJ제일제당의 ‘비비고’를 메가브랜드로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지난달 29~30일 독일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세계적인 PL(자체상표) 박람회에 피코크 제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수출을 위한 기반도 확대하고 있다. 중국에선 네덜란드 유통기업 스파인터내셔널과 손잡고 피코크 상품 공급에 나섰다. 미국에선 현지 공장을 인수해 피코크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식품업계는 이마트의 채널파워와 트렌드 분석 능력, 최고경영자(CEO)의 강력한 의지 등을 피코크의 강점으로 꼽는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이마트는 자체 판매량을 분석해 트렌드에 맞는 제품을 발빠르게 개발할 수 있어 위협적”이라고 말했다.

스타 경영자의 홍보 효과도 강력하다. 인스타그램에서만 15만7000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정 부회장은 신제품을 수시로 공개하며 ‘피코크 홍보대사’ 역할을 자처한다. 이 덕분에 HMR 대표 브랜드로 피코크를 떠올리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