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취재 제한하고 통화정책 메시지는 '어정쩡'

'카메라 기자는 건물 안에 들어올 수 없다.'

한국은행은 이주열 총재에 대한 취재 지침을 사실상 이렇게 통보했다.

미국 금리인상 결정이 나온 직후인 지난 14일 아침, 이주열 총재는 기자들과 잠깐 만나 글로벌 금융시장 영향 등에 관한 견해를 밝혔다.

밤사이 해외에서 중요한 사안이 발생하면 기자들이 한은 총재 의견을 듣기 위해 출근길을 지키곤 한다.

이는 한은의 정책 목표인 '금융안정'에도 필요하다.

무게감 있는 한은 총재의 발언으로 금융시장의 과도한 동요를 사전에 억제할 수 있다.

이번엔 연임으로 위상이 강화된 후 처음이라 관심이 더 뜨거웠다.

한은은 그러나 취재제한으로 대응했다.
소통하고 쓴소리도 한다더니…한은 총재 연임 후 역주행하나
카메라 기자는 건물 로비에서 질의응답 장면을 취재할 수 없다고 했다.

건물주인 삼성 측에서 꺼린다는 이유를 들었다.

6년 5개월 만에 금리인상이나 연임 후 첫 출근과 같이 예외적인 경우에만 한은에서 필요성을 판단해 협의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은은 이날 취재 온 언론사의 카메라 기자들을 건물 밖으로 내보내고 이 총재가 차에서 내리는 모습만 촬영을 허용했다.

그러고선 정작 로비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한 사진 촬영은 제지하지 않았다.

이날 한은의 이례적인 대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총재가 한은 출입기자들과 만나는 자리에 경비 업무를 맡은 청원경찰이 밀착 마크했다.

제복을 입은 청경들은 카메라 기자들을 밖으로 '안내'하고 문 앞에 서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안내'했다.

이어 질의응답 중에 이 총재 바로 등 뒤에 서서 지키다가 한은 측에서 상황을 끝낼 때 거들었다.

이에 대해 한은은 기획된 일은 아니라고 16일 해명했다.

총재 지시에 따른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세입자의 고충과 과잉충정, 언론기피 등 가운데 어떤 점이 배경이 됐든, 이는 한은 역사상 44년 만에 등장한 '연임 총재'에게 기대되는 모습은 아니다.

연임에 앞서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 총재가 밝힌 의지와도 다른 방향이다.

당시 그는 "중립성이 강화돼온 만큼 책임성을 높여나가겠다"며 "정책결정 배경이나 향후 방향 등을 소상히 설명하는 등 소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최근 한은에서 나오는 메시지는 오히려 모호해졌다.

이 총재는 지난해 한은 창립기념사에서 통화정책 방향 전환을 예고했는데 이번엔 '~했다.

그러나'로 이어지는 문장을 나열했다.

한은 내부에서도 의중을 알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다.

금융시장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7월 인상부터 올해 동결까지 금리 전망이 중구난방이다.

어쩌면 이것이 정말 한은이 의도한 바로 보이기도 한다.

불확실성이 너무 큰 시기에 경제주체들의 기대가 단순, 명확해지면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은이 책임에서 멀어질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청문회 때 이 총재는 쓴소리도 하고 날카로운 논제도 던지면서 국가 경제를 위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달라는 국회의원들의 주문에 그러겠다고 호응했다.

이 총재는 경기나 정부 정책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시기가 이르거나 적절치 않다'며 공식 발언은 아끼고 있다.

그러다 보니 통계와 연구결과를 두고도 민감한 내용은 조금도 언급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연임 후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 큰 변화를 보여주기엔 이를 수 있다.

그렇다고 적어도 종전보다 후퇴하는 모습이어선 안된다는 게 금융시장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