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담합(카르텔) 혐의 관련 고발이 급증하고 있다. 올 1~4월 4개월 동안 고발된 기업과 개인은 지난 한 해 실적의 3배에 달할 정도다. 올해 고발 건의 85%는 공소시효가 3개월이 채 남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전속고발권 폐지를 둘러싼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부실고발’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늑장고발' 공정위, 작년 3배 115곳 고발했지만 대부분 시효 임박
15일 국회와 재계에 따르면 공정위가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카르텔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한 기업과 개인은 총 115곳에 이른다. 이는 지난 한 해 고발 대상 39곳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고발 건수는 1~4월 14건으로 역시 작년 12건을 벌써 넘어섰다. 지난해 6월 취임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고발을 독려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고발이 급증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늑장고발, 부실고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올 들어 공정위가 카르텔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14건의 85%인 12건은 공소시효가 3개월도 남지 않은 사건이다. 공소시효가 6개월 이내여서 사실상 수사가 어려운 ‘임박고발 비율’로 보면 92%에 달한다. 2015~2017년의 임박고발 비율은 50%대였다.

형사소송법상 카르텔의 공소시효는 5년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시효 1년 전에는 고발해야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다”며 갑작스러운 고발 급증 배경에 의문을 표시했다. 그동안 고발했어야 할 사건들을 하지 않다가 뒤늦게 처리했다는 지적도 많다. 공정위가 연간 처리하는 카르텔사건은 200~300건으로 이 가운데 10%(20여건)만 검찰에 고발되고 주요 사건 5%(10여건)만 서울중앙지검에 배당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상 처분시효가 7년이고 카르텔 파악에 오랜 기간이 걸리는 점 때문에 고발이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그는 “올해 말부터 늑장고발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의 독려에 따른 부실고발이 많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시각도 나온다. 공정위가 제대로 마음먹고 고발한 사건도 법원에서 무죄로 나는 경우가 잇따르는 마당에 갑작스레 급증한 고발은 아무래도 부실한 조사에 기반한 것 아니겠느냐는 지적이다. 공정위가 지난해 카르텔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12건 가운데 절반인 6건이 시효가 끝나거나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늑장고발에 따른 촉박한 수사 기간 때문에 무혐의 처리되거나 기소유예, 약식기소 처리되는 사례도 많았다.

일각에선 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고발권 독점(전속고발권)을 유지하기 위한 행보로도 해석한다. 전속고발권 독점에 대한 반대 의견을 무마하기 위한 실적 쌓기용 아니냐는 시각이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공정위는 최근 들어 엄격한 고발요건을 따지기보다 서둘러 고발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속고발권 때문에 공소시효를 넘길 때까지 고발을 미룬다는 지적을 정치권과 감사원으로부터 받아온 게 배경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부실·늑장고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전속고발권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임용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격이나 입찰 담합 등 ‘경성 카르텔’에 대해선 전속고발권을 폐지해 검찰과 공정위의 ‘중복 업무’에 따른 기업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늑장·부실고발은 국민의 피해로 돌아온다”며 “자진 신고자에 혜택을 주는 ‘형사상 리니언시제도’를 도입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