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로 설명할 내용이 마땅치 않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삼성전자 혁신조직 삼성넥스트의 데이비드 은 사장이 최고혁신책임자(CIO)로 임명된 것으로 알려진 지난 5일, 삼성전자 관계자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큰 의미를 두지 않거나 관련 사실 자체를 잘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른 기업에서는 흔하지 않은 CIO라는 직책 신설에 대한 외부의 관심과 크게 대비됐다.

삼성전략혁신센터(SSIC)와 이를 이끄는 손영권 사장에 대한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11월 인사를 앞두고는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경기 수원 디지털시티에 손 사장이 물러날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하게 퍼졌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손 사장은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올라앉았다.

SSIC와 삼성넥스트는 삼성전자의 미래 전략을 고민하는 조직이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해 1000개가 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분석한 뒤 몇 업체를 골라 투자한다. 하지만 이 조직에 대한 삼성전자 본사의 기류에서는 강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가장 큰 이유는 조직 운영 문화의 차이에 있다. 삼성전자의 실리콘밸리 조직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한 관계자는 “삼성넥스트 등은 기업 재무가치보다 인력의 전문성과 창의성 등을 기준으로 스타트업을 인수한다”며 “듀딜리전스(기업 실사)를 중시하는 삼성전자 본사와는 자주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도 “삼성전자에서는 회삿돈을 사용하면 이에 따른 근거를 요구받는다”며 “현지인과 동포 비중이 높은 SSIC 등은 만족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해 본사 재무팀과 자주 갈등을 빚는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 같은 환경에서 SSIC와 삼성넥스트가 적극적으로 활동하도록 하기 위해 힘을 실어주고 있다. 본사 재무팀과 의견이 맞지 않아 자금이 제대로 수혈되지 않을 때는 직접 나서 교통정리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비드 은을 CIO에 임명하면서 ‘C(chief)’가 붙은 직급이 실리콘밸리에만 두 자리로 늘었다. 이른바 C레벨은 국내에 CE(소비자가전), IM(IT·모바일), DS(반도체 부품)의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를 합해 네 명뿐이다. 직원 10만 명이 넘는 국내와 1000명이 밑도는 것으로 알려진 실리콘밸리 조직의 규모 차이에 비해 많은 숫자다.

업계 관계자는 “어느 조직이든 새로운 파트에 힘이 실리면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라며 “혁신에 대한 이 부회장의 갈망이 커 갈등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노경목/좌동욱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