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회사 로컬모터스는 공장 자동화의 ‘완성형’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기업이다.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근로자가 불과 3명이다. 3차원(3D) 프린터로 자동차를 ‘인쇄’하기 때문이다. 컴퓨터에 도면을 입력하면 3D 프린터가 40여 시간 만에 차체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나온 차체를 또 다른 3D 프린터가 가다듬는다. 마지막으로 기존 자동차 회사에서 미리 주문한 부품을 조립하면 공정이 끝난다. 영화 ‘트랜스포머 4’에 등장한 사막 경주용 자동차를 공급할 정도로 성능도 검증됐다.

로컬모터스가 이처럼 자동화를 밀어붙이는 동안 공장에서 쫓겨난 근로자는 단 한 명도 없다. 로봇이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업계의 전망은 빗나갔다. 로컬모터스 공장에서는 연구개발 인력을 포함해 100여 명이 일한다. 여기에 산학협력과 크라우드 소싱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창출한 일자리까지 합하면 숫자는 수백 명으로 증가한다. 로컬모터스는 10년 안에 제주도를 포함한 세계 200여 곳에 생산 공장을 짓고 연구인력을 고용할 계획이다.
자동화율 높인 獨 보쉬… 4년 새 직원 12만명 늘고 영업익 두 배 '껑충'
일자리 창출하는 선진 제조업

독일의 자동차 부품 기업 보쉬도 대표적인 굴뚝기업이었지만 지금은 첨단 자동화의 상징으로 변모했다. 2011년부터 자동화 비율을 높여 자동 조립 로봇 140대를 새로 공장에 도입했다. 하지만 보쉬 직원 수는 2013년 28만 명에서 지난해 40만 명으로 되레 급증했다. 생산라인의 인력이 줄었지만 연구개발과 품질 점검 인력을 더 많이 고용했기 때문이다. 생산성이 늘면서 매출도 같은 기간 461억유로(약 58조원)에서 781억유로(약 98조원)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독일을 상징하는 또 다른 제조업체 헨켈은 인수합병 등을 통해 연구인력 규모를 대폭 늘렸다. 인력 보강은 세제 제조에 3D 프린팅 등 신기술을 도입하고 전자·자동차 부품의 충격과 소음을 흡수하는 접착제를 개발하는 등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발판이 됐다. 이 덕분에 작년에는 26조60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전체 직원 수도 2013년 4만6000명에서 작년 기준 5만4000여 명으로 늘었다.

생산성 높아지고 임금도 증가

이처럼 신(新)제조업이 일자리를 늘린다는 연구 결과는 최근 들어 쏟아지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지난 4월 발표한 2018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자동화로 제품 경쟁력이 상승해 수요를 늘려 아시아 지역 일자리 3400만 개를 늘렸다”고 분석했다. 제조업 혁신으로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이 기존 산업에서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를 창출해 경제 성장을 이끄는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컨설팅업체 딜로이트도 지난해 노동력 연구 보고서에서 “영국에서 지난 15년 동안 진행된 자동화가 콜센터 등 저숙련 서비스 일자리 80만 개를 없애버렸지만 같은 업종에서 고숙련 일자리 350만 개를 창출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늘어난 일자리의 연봉 평균은 사라진 일자리보다 1만3500달러 높았다.

전통 제조업 외면받는 한국

이 같은 글로벌 제조업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제조업은 여전히 ‘고용 부진’과 ‘양극화’를 촉발하는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전통 제조업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는 아예 사라졌다. 제조업에 국한한 정부 대책은 2014년이 마지막이다. 당시 내놓은 ‘제조업 혁신 3.0 전략’도 4년이 지났지만 성과를 체감하기 힘들다는 평가다.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새 정부가 혁신성장을 외치며 벤처와 기술투자에만 ‘올인’하다 보니 전통 제조업은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고 말했다.

‘제조업 패싱’의 결과는 산업 현장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다. 공정혁신의 핵심인 로봇 도입률에서 한국은 압도적인 세계 1위다. 국제로봇연맹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노동자 1만 명당 로봇 숫자는 631대에 달한다. 세계 평균(74대)은 물론 독일(309대) 일본(303대) 미국(189대) 등에 비해서도 두 배 이상 많다. 하지만 대부분 자동화 로봇은 독일과 일본에서 수입해 쓰고 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