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문 대표와 작가들이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에 모였다. 왼쪽부터 강성은 학예실장, 강유진, 조혜진, 김주리, 박성소영, 이 대표, 감민경, 민성식, 정성윤 작가. 천안=김낙훈 기자
이수문 대표와 작가들이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에 모였다. 왼쪽부터 강성은 학예실장, 강유진, 조혜진, 김주리, 박성소영, 이 대표, 감민경, 민성식, 정성윤 작가. 천안=김낙훈 기자
레인지후드업체 하츠 창업자이자 ‘뮤지컬 명성황후’ 산파 역할을 맡았던 이수문 아트센터화이트블럭 대표(70)가 오는 11일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 문을 연다. 그는 “이곳을 융·복합 예술공간으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충남 천안의 명물은 호두과자다. 호두는 천안에서도 특히 광덕면에서 많이 자란다. 천안과 공주 중간쯤에 있는 광덕면은 광덕산을 끼고 있어 경치가 수려한 데다 콩, 호두, 밤 등의 산출이 많은 곳이다.

지난 4일 찾은 광덕산 자락에는 시각예술작가들을 위한 입주작업공간인 레지던시의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오는 11일 공식 개관하는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이다. 작가들을 위한 무료 숙소 및 작업장이다. 7590㎡ 규모의 부지에 4개동의 건물이 들어섰다. 뒤쪽엔 울창한 산림이다. 화이트블럭이 소유한 전체 부지는 이번에 문을 여는 천안창작촌을 포함해 9만㎡에 이른다.

[김낙훈의 기업인 탐구] 젊은 예술인에 전기료만 받고 작업실 빌려줘
건물은 2층으로 돼 있다. 각층의 층고는 4.7m에 달해 대형 작품도 제작할 수 있고 다락방에선 잠도 잘 수 있다. 한 동에 4명씩 모두 16명이 입주했다. 감민경, 강유진, 김윤아, 민성식, 박성소영, 조이경 작가 등이다. 연령대는 3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까지다.

지난달부터 입주를 시작했다. 전기료만 내는 조건이다. 이곳을 설립한 이수문 대표는 “작지만 뜻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시작했다”며 “입주기간은 원래 2년이지만 한꺼번에 퇴소하는 일이 없도록 처음 입주시에만 단기(1년)와 장기(2년)로 나눴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서양화과(학·석사)를 나온 뒤 네덜란드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한 강유진 작가는 “여류작가의 소설 내용에 맞는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통풍이 잘되는 데다 작업장 층고가 높아 물감 냄새가 금방 빠져 작업하기가 좋다”고 말했다. 감민경 작가는 독일 베를린에서 1년간 체류하며 개인전을 열었다. 조각이나 영상작업 설치미술을 하는 사람도 있다. 공동 커뮤니티 공간에선 작품에 대한 얘기도 나눈다.

작가들이 예술활동을 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작업 공간이다. 서울 인근에 작업장을 마련하려면 작은 공간이라도 월세가 보통 50만~100만원대에 이른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작가들로선 부담이 크다. 이들에게 창작촌은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대표는 “이곳은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미술창작 공간과 전시실”이라며 “능력과 열정은 있지만 경제적 여건 때문에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예술인들을 위해 개인당 60㎡ 정도의 공간을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그가 이런 시설을 마련한 것은 예술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다. 보루네오 한샘 등 기업체에 15년간 몸담은 뒤 레인지후드업체 하츠를 창업한 이 대표는 예술인의 ‘끼’가 넘치는 사람이다. 경기고 시절 밴드부와 연극반을 거쳤고 서울대 건축공학과 시절에도 연극반에서 활동했다. 그는 하츠 사장 시절 작가와 연출가를 규합해 런던 뉴욕 등 뮤지컬 본고장을 둘러본 뒤 뮤지컬 명성황후를 탄생시키는 산파 역을 맡기도 했다.

2008년 하츠를 매각하고 2009년 경기 파주 헤이리에 아트센터화이트블럭을 건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도 4명이 입주한 레지던시를 운영 중인데 너무 작다고 판단해 천안에 좀 더 큰 공간을 마련했다. 이 대표는 “공공기관이 아니라 개인이 설립한 레지던시는 무엇보다 지속 가능성이 중요하다”며 “앞으로 단계별 확장을 통해 미술관 레스토랑 등도 운영해 자립할 수 있는 공간으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이곳은 천안과 공주를 잇는 길목인 데다 인근에 광덕산 광덕사 마곡사 등이 있어 이들을 연결하는 관광명소로 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천안창작촌이 호두과자처럼 천안의 명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