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서 국내 장기채권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해외 채권 관련 악재가 잇따르고 환헤지(위험 회피) 비용이 증가하면서 상대적으로 국내 우량채가 안전자산으로 부각되고 있어서다.

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이 회사채 발행을 위해 지난달 31일 일괄신고 방식으로 입찰을 벌인 결과 총 3000억원의 매수주문이 들어왔다. 일괄신고는 자주 채권을 발행하는 기업이 수요예측(사전 청약) 없이 신속히 투자자를 모집해 채권을 찍고 발행일에 해당 내용을 공시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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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은 이번에 모인 수요에 맞춰 3년물 300억원, 20년물 2000억원, 30년물 700억원을 5일 발행한다. KB증권이 채권 발행실무를 맡았다. 한수원이 만기 20년 이상 초장기물을 발행한 것은 올 들어 세 번째다.

한수원을 비롯해 국내 기업의 장기물 발행은 늘고 있다. 한국남동발전이 지난 4월 국내 기업 중 최초로 정식 공모절차를 거쳐 30년물을 찍었다. 지난 1~5월 만기 10년 이상 선순위 공모 회사채 발행규모는 1조6150억원으로 작년 한 해(1조1300억원) 기록을 넘어섰다. 모두 신용등급 ‘AA’ 이상의 우량채권이다.

장기물 시장의 ‘큰손’은 보험사들이다. 보험사는 2021년 새 회계처리기준(IFRS17) 도입을 앞두고 장기물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IB 관계자는 “보험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는 IFRS17에선 보험사의 부채 증가가 불가피하다”며 “장기물 비중을 늘려 자산과 부채 만기를 일치시켜야 하는 보험사들의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해외채권 투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것도 국내 장기물에 대한 수요를 확대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 우려가 커진 이탈리아의 국채 금리가 급등했고, 국내 기관들이 투자한 중국 기업 차이나에너지리저브&케미컬그룹의 채권 부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해외 채권 경계심리가 확대되고 있다.

이미 환헤지비용 증가로 달러채 기대수익률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해외채권 투자에 대한 부담이 가중된 셈이다. 외화자금 시장에서 원화를 달러로 교환하는 비용인 ‘외환(FX)스와프포인트’는 약 9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 수치가 내려갈수록 원화로 달러자산에 투자할 때 헤지비용이 증가한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