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주 KEB하나은행장.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채용비리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함영주 KEB은행장(사진)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하나은행이 '수장 부재'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는 면하게 됐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서부지법은 2일 함 행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곽형섭 영장전담판사는 "피의사실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고 현재까지 확보된 증거자료와 피의자가 수사에 임하는 태도 등 모든 사정을 고려하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앞서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정영학 부장검사)는 업무방해,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로 지난달 30일 함 행장의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한 바 있다.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함 행장은 당장 직무 면직 등의 우려에서는 벗어났다. 그러나 불씨는 남아있다는 분석이다. 업무방해 또는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가 확정되면 행장직에서 물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은 사외이사 또는 계열사 사장과 관련된 지원자들에게 사전에 공고하지 않은 전형을 적용하거나 임원면접 점수를 높게 주는 등 특혜 채용 의혹으로 고강도의 수사를 받아왔다. 특정대학 지원자의 면접 점수를 임의로 올리거나 낮추고, 남녀 채용비율을 정해 선발하는 등의 혐의도 있다.

금융감독원이 진행했던 하나은행 특별검사에서는 추천에 따른 특혜 채용(2013년) 명단에 함영주 행장으로 추정되는 이름이 나왔다. 당시 하나은행 충청사업본부 대표였던 함 행장의 추천을 받은 지원자가 합격 기준에 미달했음에도 임원 면접에 올라 최종 합격한 것이다.

문제는 함 행장 외에도 하나은행 채용비리로 낙마한 최흥식 전 금감원장, 김종준 전 하나은행장,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으로 추정되는 이름이 명단에 있다는 점이다.

이에 검찰은 함 행장 뿐 아니라 지난 24일 최 전 원장, 29일 김 회장을 각각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으며, 최 전 원장과 김 회장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혐의를 입증할 관련자들의 진술을 상당 부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던 함 행장은 "김정태 회장의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은행권 안팎에선 함 행장의 구속영장 기각 가능성을 점쳐왔다. 비슷한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졌던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이 구속되지 않은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전 행장과 달리 구속된 박인규 전 DGB대구은행장의 경우 채용비리에 따른 업무방해 혐의와 함께 비자금 조성 등과 관련한 업무상 횡령 및 배임, 증거인멸교사 등의 혐의도 추가로 받고 있어 구속영장이 청구된 두 행장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한편 이 전 행장에 이어 함 행장까지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검찰의 무리한 수사 방식이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한 은행업계 관계자는 "검찰이 채용비리 의혹만으로 현직 은행장까지 구속 수사를 밀어붙인 점은 은행권에 적잖은 충격을 던졌다"며 "앞으로 검찰이 '윗선'으로 향해 있는 수사를 어떻게 이어갈 지 다른 은행들도 신중히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채선희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