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기 대형화' 발목 잡은 건… 기술 아닌 양말?
새로운 전자제품을 내놓을 때 종종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목을 잡곤 한다. 이번에는 손바닥 크기의 양말 한 장이 문제가 됐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는 건조기 대형화와 관련해서다.

지난해 시장이 크게 확대되며 생활 필수 가전으로 자리잡고 있는 건조기의 올해 가장 큰 이슈는 대형화다. 삼성전자가 용량 14㎏의 건조기 ‘그랑데’를 지난 2월 출시한 데 이어 LG전자도 5월 같은 용량의 제품을 내놨다. 8~9㎏인 기존 건조기와 비교해 두 배 가까이 커졌다. 최대 19㎏에 이르는 세탁기 용량과 맞추기 위한 시도의 결과다. 용량 14㎏ 세탁기에서 빨래한 세탁물을 9㎏ 건조기에서 말리려면 두 번에 나눠 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도는 시장에서 먹혔다. 건조기 시장 후발주자인 삼성전자는 제품 대형화에 먼저 나서며 올 들어 LG전자와의 격차를 좁힌 것으로 전해졌다. LG전자가 3개월 만에 대용량 건조기를 내놓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두 회사의 이 같은 시도는 예상치 않은 복병을 만났다. 바로 양말과 손수건이다. 건조기 내부 공기가 빠져나가는 필터 입구를 양말과 손수건이 막아 세탁물에서 나온 먼지가 제대로 빠져나가지 않는 문제가 나타났다.

건조기는 내부에 뜨거운 공기를 불어넣어 습기를 증발시키는 방식으로 세탁물을 말린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건조통 외부로 빠져나와 다시 차가워지며 수분을 배출한다. 건조기가 커질수록 내부 공기를 더 빠르게 외부로 뽑아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양말과 손수건 등 작은 세탁물이 필터로 통하는 작은 구멍에 끼는 문제가 나타났다.

건조기의 기본 원리와 관련된 문제다 보니 해결이 쉽지 않다. 먼저 문제를 발견한 삼성전자는 해당 필터를 새로운 모델로 교체했다. 필터로 통하는 구멍을 크게 해 양말 등이 걸리지 않도록 디자인을 바꿨다.

LG전자도 삼성전자의 어려움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필터 디자인에 공을 들였다. 건조기 내부 공기가 필터 윗면과 옆면을 통해 빠져나가도록 해 세탁물 위에 먼지가 내려앉을 여지를 차단했다. 다만 양말 등이 내부 기류의 영향으로 필터 위에 놓이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건조기의 편의성에 비해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작은 부분까지 해결해 완벽한 제품을 내놓는 쪽이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