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원전에 자원개발 수사까지… 산업부 전·현직 에너지라인 '쑥대밭'
해외 자원개발 사업이 ‘적폐청산’ 차원에서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산업통상자원부가 발칵 뒤집어졌다. 자원개발이 추진된 2008~2010년 당시 해당 분야에 몸담았던 ‘에너지라인’ 관계자들부터 줄줄이 옷을 벗고 있다. 이미 산업부를 떠나 공기업 등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까지 정부가 ‘적폐’로 규정해 내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 현직 간부 상당수도 소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산업부 한 공무원은 “지난해 새 정부가 탈(脫)원전으로 에너지 정책을 180도 바꾸면서 에너지라인 핵심 간부가 대거 옷을 벗었는데 이번엔 자원개발을 빌미로 ‘2차 숙청’이 이뤄지려는 상황”이라며 “산업부 분위기는 한마디로 최악”이라고 했다.

전직 간부들 줄줄이 사퇴

31일 산업부에 따르면 문재도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이 이날 돌연 사의를 밝혔다. 문 사장의 사의는 곧바로 수리돼 면직 처리됐다. 문 전 사장의 임기는 2020년 3월까지로 아직 2년 가까이 남아 있다. 김경원 지역난방공사 사장도 이날 사의 뜻을 정부에 전달했다. 김 사장의 임기는 1년 정도 남아 있다. 강남훈 에너지공단 이사장도 전날 임기를 1년 남긴 시점에서 사임했다. 세 사람 모두 과거 지식경제부(현 산업부)의 에너지 관련 실무책임자였다. 문 전 사장은 2010년 지경부 자원개발원전정책관을, 김 사장은 2008년 기후변화에너지정책관을, 강 전 이사장은 2009년 자원개발원전정책관을 지냈다.

산업부 안팎에선 이들 세 사람이 이틀 새 잇따라 옷을 벗은 것을 놓고 최근 자원개발 검찰 수사와 연관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부 출신인 김영민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도 조만간 사의를 표명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사장의 임기는 오는 11월까지다.

산업부는 지난 29일 해외 자원개발 사업의 의혹을 밝혀달라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는 백운규 장관의 지시로 이뤄진 것이란 게 산업부 관계자 설명이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 당시 에너지와 자원외교 업무를 담당했던 현직 간부 상당수에 대해 소환조사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공무원들은 1~2년 단위로 순환근무를 하는데 에너지는 산업부 핵심 업무인 만큼 안 거친 사람이 없다”며 “검찰 수사가 확대되면 현직 간부 대부분이 직간접적인 연루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했다.

‘2차 숙청’ 시작되나 촉각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탈원전 정책 선언과 함께 산업부 에너지라인 고위간부 전원이 물갈이됐다. 이들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해당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출석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탈원전 정책을 두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을 밝혔다가 청와대 눈 밖에 난 것으로 알려졌다.

에너지 정책을 총괄했던 우태희 전 2차관과 김학도 전 에너지자원실장이 지난해 7월과 9월 자리에서 물러난 게 대표적이다. 에너지산업정책관, 에너지자원정책관, 원전산업정책관, 에너지산업정책단장 등 에너지자원실 산하 4개 국장급 자리도 전부 바뀌었다. 산업부 한 공무원은 “부처 내에서는 ‘탈원전 업무 하면 탈난다’는 웃지 못할 말까지 생겼다”며 “현 정부 성향에 맞춰 탈원전 업무를 하다 나중에 정권이 바뀌면 선배들처럼 적폐로 몰리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정권 바뀔 때마다 범죄자 만들 건가”

해외 자원개발 사업이 본격 추진되던 2008~2010년은 유가와 원자재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기다. 전문가들은 “사업 추진 과정에 일부 문제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자원이 빈약해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갖춘 한국이 해외 자원개발에 뛰어든 것 전체를 적폐로 몰아가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원업계 관계자는 “장기간에 걸쳐 수많은 실패를 겪다가 한 곳에서 ‘대박’이 터지면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구조”라며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 한국석유공사의 베트남 가스전도 상업생산까지 14년이라는 시간과 4억달러 이상의 비용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과거 자원개발 관련 업무에 종사했던 산업부 한 공무원은 “성공을 확신할 수 있는 자원개발 사업이 어디 있겠느냐”며 “사업에 실패했다고 공무원을 범죄자 취급한다면 앞으로 아무도 총대를 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산업부가 개각을 앞두고 갑자기 ‘적폐청산 경쟁’에 뛰어든 점에 의구심을 품는 시각도 있다. 산업부 관료를 지낸 한 인사는 “이명박 정부의 소위 사·자·방(4대강 정비사업, 자원외교, 방산비리) 적폐청산 중 자원외교만 왜 성과가 없느냐는 압박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