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B하나은행 을지로 신사옥.
KEB하나은행 을지로 신사옥.
KEB하나은행이 현직 은행장에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시중은행의 채용비리 의혹을 수사중인 검찰이 함영주 하나은행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하나은행은 당혹감에 휩싸였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정영학 부장검사)는 전날 업무방해 등 혐의로 함영주 행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나은행은 사외이사 또는 계열사 사장과 관련된 지원자들에게 사전에 공고하지 않은 전형을 적용하거나 임원면접 점수를 높게 주는 등 특혜 채용 의혹으로 수사를 받아왔다.

또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 소위 SKY 대학 지원자의 면접 점수를 임의로 올리고 가톨릭대, 건국대, 동국대, 명지대 등의 지원자의 점수는 낮춘 혐의가 있다. 여기에 남녀 채용비율을 정해 선발하거나, 채용과정서 남성을 더 많이 선발하기 위해 순위를 조작했다는 혐의도 있다.

검찰은 이같은 채용과정에서 함 행장 등 윗선이 개입했다고 판단,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현직 시중은행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채용비리의 직격탄을 맞았던 지방은행의 경우 박인규 DGB대구은행장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박 행장은 행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전직 행장 신분으로 구속됐다. 역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은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바로 사퇴한 뒤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현직 은행장의 구속영장 청구에 하나은행 내부는 당혹감에 휩싸인 분위기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다른 할말이 무엇이 있겠냐"며 "현재로선 영장 실질심사 결과를 차분히 지켜볼 뿐"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 모 지점에 근무중인 A씨는 "채용비리가 드러난다면 그에 맞는 벌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면서도 "다만 조직의 수장이 구속영장 청구됐다는 소식에 많은 직원들이 씁쓸해 하고 있고 의욕도 잃은 모습"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함 행장이 구속될 경우 하나은행은 물론 하나금융그룹도 타격이 클 전망이다. 현재 함 행장은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유고 시 직무대행을 맡을 '이인자'로 꼽히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함 행장 뿐 아니라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도 채용비리 의혹에 연루돼 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최흥식 전 금감원장의 사퇴를 불러온 2013년 하나은행의 채용비리 특별검사에서 총 32건(잠정)의 채용비리 정황을 확인했다. 구체적으로는 채용 청탁에 따른 특혜채용(16건), 최종면접에서 순위 조작을 통해 남성 특혜 합격(2건), 특정대학 출신을 합격시키기 위한 최종면접 단계에서의 순위 조작(14건) 등이었다.

추천에 따른 특혜채용 과정에선 최흥식 전 금감원장, 함영주 하나은행장, 김종준 전 하나은행장,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으로 추정되는 명단이 나왔다. 이에 검찰은 최근 함 행장을 포함해 최흥식 전 금융감독원장, 김정태 회장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앞서 은행업계 안팎에선 채용비리 관계자들의 검찰 소환 소식이 더이상 들리지 않자, 관련 수사가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함 행장의 구속영장 청구로 상황이 뒤집어진 만큼 피의자 조사를 받은 김정태 회장도 안심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함 행장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는 내달 1일 오후 2시에 예정돼 있다. 구속이 결정될 경우엔 '직무 해제'가 불가피 할 전망이다.


채선희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