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스에 이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3위 경제대국인 이탈리아 금융시장 불안에 세계 증시가 요동쳤다. 이탈리아가 정국 혼란으로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빠지자 국채 투매 조짐이 나타나면서 금리가 급등하는 등 시장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이탈리아 금융시장이 출렁이자 유럽과 미국에 이어 아시아 증시까지 영향을 받았다.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은 “또 다른 금융위기를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29일(현지시간) 연 3.18%로 0.51%포인트 급등(국채 가격은 하락)했다. 2014년 4월 이후 4년여 만의 최고치다. 유로화 가치는 1유로당 1.1538달러로 지난해 7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글로벌 헤지펀드들은 이탈리아 국채 금리가 추가 상승(국채 가격 하락)할 것으로 보고 공매도에 나섰다. 이탈리아 국채를 많이 보유한 이탈리아와 스페인 은행들의 유동성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탈리아 쇼크'에 글로벌 증시 '흔들'… 소로스 "금융위기 다시 올 수 있다" 경고
아시아 증시에도 충격이 전해져 코스피지수는 30일 48.22포인트(1.96%) 떨어진 2409.03에 마감했다. 시장에선 2012년 세계를 뒤흔든 유럽 재정위기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소로스 회장은 이날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럽외교협의회 연례회의에서 “달러 가치가 급등하고 신흥국에서 자본이 이탈하고 있다”며 금융위기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유럽은 난민 위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으로 실존적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선 이탈리아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이탈렉시트(Italexit)’ 가능성마저 거론된다. 미국이 500억달러(약 54조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키로 하는 등 통상전쟁이 다시 불붙고 있는 것도 시장의 불안 요인이다.

다만 30일에는 이탈리아 10년물 금리가 연 3.03% 수준으로 낮아지고 유로화 가치도 0.6%가량 반등했다. 미국 다우지수도 장 초반 0.6%가량 상승 출발했다. ‘패닉’이 다소 진정되는 모습이지만 불안은 여전하다.

이탈리아 금융시장 불안은 이미 국경을 넘어 인접국으로 번지고 있다. 스페인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이달 들어 급상승해 독일 국채와의 스프레드가 1.36%포인트로 커졌다. 스페인과 독일의 국채 스프레드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1%포인트 미만이었다. 포르투갈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연 2.13%로 한 달 만에 0.5%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이탈리아 국채를 많이 보유한 유럽 주요 은행이 채권값 하락(금리 상승)으로 위기 상황에 놓였다.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프랑스(3000억달러) 독일(1000억달러)을 비롯해 외국 은행들은 6000억달러어치가 넘는 이탈리아 국채를 갖고 있다.

반면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높아지면서 미국 국채 금리는 급락(가격 상승)했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29일 연 2.77%로 전날보다 0.15%포인트 하락했다.

하루 하락 폭으로는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해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였던 2016년 6월 이후 최대다. 금리 상승(가격 하락)을 예상하고 미 국채를 팔았던 투자자들이 예상이 빗나가자 미 국채를 급하게 되사들이면서 금리 하락폭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시장 불안이 커진 만큼 미국 중앙은행(Fed)의 통화정책에도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Fed가 기준금리를 올해 모두 세 차례 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이탈리아발 금융 불안은 긴축 정책에 부담을 주는 요인이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양적완화(QE) 정책을 예정대로 올해 안에 끝낼지를 두고 고민거리를 안게 됐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 총재는 로이터 인터뷰에서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개선되지 않으면 금리를 올려선 안 된다”며 “유럽 일본이 저금리를 유지하는데 미국만 금리를 올리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