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發 '금융 쇼크'

'이탈렉시트' 우려 고조
伊 2년물 국채가격 22년 만에 최대폭 하락
국채 보유한 유럽은행들 부실 위험 커져
"제2의 그리스 되나" 유럽 재정위기 재연 우려
이탈리아발(發)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이 아시아 증시에도 영향을 미쳤다. 코스피지수는 30일 48.22포인트(1.96%) 하락한 2409.03에 마감했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한 직원이 주가를 확인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이탈리아발(發)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이 아시아 증시에도 영향을 미쳤다. 코스피지수는 30일 48.22포인트(1.96%) 하락한 2409.03에 마감했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한 직원이 주가를 확인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3위 경제대국인 이탈리아의 국채 가격 급락(국채 금리 급등)이 세계 금융시장의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유로화 가치가 급락하고 유럽과 미국, 아시아 증시가 연쇄 하락했다. 터키, 아르헨티나, 동유럽은 물론 유럽의 심장부까지 흔들릴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10년대 초 국채 가격 급락이 은행 부실, 뱅크런, 구제금융으로 이어진 ‘파멸의 올가미(doom loop)’가 연상된다”고 29일(현지시간) 전했다.

◆이탈리아, ‘제2의 그리스’ 되나

이날 이탈리아 금융시장 혼란은 정국이 불안한 가운데 이냐치오 비스코 중앙은행 총재가 “이탈리아는 신뢰라는 대체할 수 없는 자산을 잃을 위험에 바짝 다가서 있다”고 경고하면서 극대화됐다. 그는 “경제 위기가 닥쳐 자산 가치 상실이 예상되면 투자자들이 앞다퉈 떠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로존 3위 경제국' 이탈리아 국채 한때 투매… 글로벌 금융시장 '출렁'

이 여파로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금리는 한때 연 3.388%까지 오르며 유럽연합(EU) 내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독일 국채 10년물과 금리 차가 3.2%포인트까지 벌어졌다. 2013년 10월 이후 4년여 만의 최대다. 이탈리아 2년물 국채 금리는 연 2.69%로 단번에 1.8%포인트나 치솟았다. 하루 상승폭으로는 1996년 이후 22년 만의 최대다. 밀라노증시도 2.7% 급락했다.

유로화 환율은 이날 1.151달러까지 급락하며 지난해 7월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유로화 가치가 급락한 것이다. 30일에는 이탈리아 국채금리가 다소 떨어지고 밀라노 증시도 소폭 반등했지만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일부 전문가는 이번 위기가 ‘그렉시트(그리스의 EU 탈퇴)’ 우려를 낳았던 2012년 유럽 재정위기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위기에 빠지면 그리스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그리스 구제금융에는 총 2500억유로의 자금이 들어갔다. 이탈리아는 국내총생산(GDP)이 그리스의 10배다. 이탈리아가 재정위기에 빠지면 국제통화기금(IMF)이 최대 5000억유로, 유럽안정화기구(ESM)가 4000억유로를 쏟아부어도 부채 구제가 어려울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이탈리아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132%로, 그리스에 이어 유로존에서 두 번째로 높다.

◆포퓰리즘 정권의 脫EU 압박

이탈리아 정국 혼란으로 촉발된 유로존 위기는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로 빠르게 전이됐다. 스페인은 6월1일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의 불신임 투표를 앞두고 있어 정치적 불안도 높아지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동유럽 국가에 지원하던 300억유로(약 37조5000억원)를 남유럽 국가로 돌리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동유럽 국가의 통화 가치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스티펠의 린지 피에그자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탈리아의 정치권 리스크가 확산되면서 유럽의 경제성장 모멘텀이 꺾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포르투갈 국채 가격 하락으로 유럽 은행의 주가도 29일 한때 5% 이상 폭락했다. 이탈리아계 은행이 보유한 자산 대비 국채 비중은 11%에 육박한다.

문제는 이탈리아에서 재총선이 치러져도 포퓰리즘 정권 ‘오성운동-동맹 연합’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들은 연금개혁안 폐지, 소득세 인하 등 재정에 부담을 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시장에선 이들이 재정적자 비율을 제한하는 EU를 탈퇴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이른바 ‘이탈렉시트(Italexit: 이탈리아의 EU 탈퇴)’ 공포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금융시장 불안을 둘러싸고 이탈리아와 독일의 정치적 균열까지 나타나면서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독일 국적의 귄터 외팅거 EU 예산담당 집행위원은 한 인터뷰에서 “금융시장 불안이 이탈리아인들이 포퓰리즘 세력에 투표하지 않도록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동맹 대표는 “이탈리아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헤지펀드의 대부’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은 이날 프랑스에서 열린 유럽외교협의회(ECFR) 연례회의에 참석해 “독일 등 유럽의 경제강국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회원국에 부채 축소 등 긴축 정책을 강요하면서 EU의 결속력이 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CB가 당초 오는 9월 대규모 자산 매입을 중단하는 출구전략을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이번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경기부양책을 유지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