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들(청와대 정책 참모들)이 바뀔 사람들이 아닙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그저 소득 격차에 있다고 보는 분들이에요. 그러니 결론은 무조건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겠죠.”

김동연 경제부총리
김동연 경제부총리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9일 오후 청와대에서 정책 참모 및 경제장관들을 소집해 ‘가계소득동향 점검회의’를 하던 시각. ‘회의 결론이 어떻게 날 것 같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경제부처 간부급 공무원이 한 대답이다.

2시간30분에 걸친 회의가 끝난 뒤 청와대가 김의겸 대변인 명의로 내놓은 회의 결과 서면브리핑 내용은 이 공무원의 예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김 대변인은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문재인 정부 3대 경제정책 기조를 유지하되 보완책을 마련하는 데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밝혔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바꾸지 않겠다는 의미다.

기자가 회의에서 오간 내용을 듣기 위해 한 참석자에게 묻자 “상당한 논쟁이 있었다.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 일괄적으로 정리해서 얘기할 테니 아무 말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했다. 정작 김 대변인은 “1분위 가계소득 감소 원인으로 고령화, 최저임금 인상, 자영업과 건설경기 부진 등을 놓고 자유롭게 토론을 벌였다”고만 밝혔다.

장하성 靑 정책실장
장하성 靑 정책실장
‘상당한 논쟁’은 사실상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대(對) 나머지 10명의 청와대 참모 및 다른 부처 장관들 구도로 벌어졌다는 후문이다. 김 부총리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했지만,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비롯한 나머지 수석들(홍장표 경제·김수현 사회·반장식 일자리수석, 김현철 경제보좌관)은 일제히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옹호하는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측에서도 김 부총리를 제외한 나머지 참석자(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는 모두 장 실장 의견에 가세했다.

회의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김 부총리가 사실상 혈혈단신으로 맞섰다”며 “그럼에도 논쟁에서 밀리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김 부총리도 이튿날인 30일 기재부 간부회의에서 “우리 부의 분석과 입장을 토대로 충분하고 솔직하게 의견을 개진했다”고 말했다. 저소득층 가계소득 하락의 원인과 해법을 놓고 의견 충돌이 있었지만, 본인이 할 말은 다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경제팀을 긴급 소집한 것은 지난해까지 증가 추세를 보이던 저소득층 가계소득이 지난 1분기에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분배 악화에 대해 문 대통령 스스로 “우리에게 매우 아픈 지점”이라고 했듯이 소득주도 성장의 근간을 흔드는 결과이기도 하다.

1분기 가계소득이 줄어든 것은 일해서 번 소득인 근로소득이 감소한 탓이 크다. 1분위 근로소득은 13.3%, 2분위는 2.9% 줄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부담을 느낀 사업주들이 고용을 축소했다”고 말했다.

다수 전문가가 저소득층 소득 감소의 원인으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지목한 것과 달리 청와대는 “1분위 소득 증대를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엉뚱한 처방을 내렸다. 기재부는 곧바로 소득 하위 20%를 위한 맞춤형 정책을 내놓을 준비에 들어갔다. 노인 일자리 사업 및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 기초연금 인상 등이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저소득층 소득 감소의 원인을 노동 수요 측면에서 보지 않고 공급 측면에서만 찾으려는 것 같다”며 “재정이나 세제 지원으로 늘린 일자리가 얼마나 갈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저소득층 일자리를 만들어 스스로 근로해 소득을 늘리도록 하지 않고 ‘재정 중독증’만 키우는 꼴이라는 지적이다.

김동연의 '1 대(對) 10 논쟁'… 처음부터 결론 정해져 있었다
청와대 회의가 사실상 ‘보여주기’에 가까웠다는 비판도 있다.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고용에 이어 소득지표마저 최악으로 나오니 선거를 앞두고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순 없었을 것”이라며 “소득주도 성장 정책 유지라는 답이 이미 정해져 있던 회의”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청와대와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다고 지적한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정책 담당자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반대되는 의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며 “귀를 닫음으로써 경제 문맥을 모르는 영혼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