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한 톨보다 작은 MLCC.
쌀 한 톨보다 작은 MLCC.
전자제품 부품업계에 1분기는 ‘계절적 비수기’로 꼽힌다. 스마트폰 등 주요 완제품이 주로 2, 3분기에 출시되기 때문이다. 1분기 실적이 좋지 않은 이유다. 삼성전기는 달랐다. 지난 1분기(1~3월) 매출 2조188억원, 영업이익 154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5%, 영업이익은 503.9% 늘어났다. 회사 측은 MLCC(적층세라믹커패시터) 판매 증가로 실적이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는데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제품 가격이 뛰었다.

반도체 있으면 어디든 간다

MLCC는 대표적인 ‘수동 부품’으로 분류된다. 반도체와 같은 ‘능동 부품’ 주변에서 전기를 저장했다가 일정량씩 공급하는 ‘댐’ 역할을 한다. 회로에 전류가 들쭉날쭉하게 들어오면 부품이 망가지고 제품 결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각 부품 간에 발생하는 간섭 현상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제품마다 크기는 제각각이지만 스마트폰에 가장 많이 탑재되는 제품은 가로 0.6㎜, 세로 0.3㎜ 크기다. 머리카락 두께(0.3㎜)와 비슷하다. 이렇게 작은 MLCC 안에는 세라믹과 금속(니켈)이 번갈아 쌓여 있다. 층수는 최대 700겹에 이른다. 층을 많이 쌓을수록 전기를 많이 축적할 수 있기 때문에 제품 크기는 최대한 작게 만들면서 층수를 높이는 게 MLCC 기술력의 관건이다. 1000도 이상 고온에서 세라믹에 균열이 가지 않도록 구워내는 것도 중요하다.
와인잔 채우면 최소 1억… '전기차 필수품' MLCC를 아시나요
스마트폰, TV, 전기자동차 등 반도체와 전자회로가 있는 제품에는 대부분 들어간다. 최근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을 중심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제품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주요 제품에 들어가는 MLCC 양도 늘어나고 있다. 스마트폰 초기 모델에는 MLCC가 약 200~300개 쓰였지만 삼성전자의 최신 휴대폰 갤럭시S9 한 대에는 약 1000개가 들어간다. 생체 인식이나 듀얼(렌즈 2개 장착) 카메라 등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면서 전력 사용량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수요가 급증하면서 지난 1년간 MLCC 가격은 29% 올랐다. MLCC로 300mL 와인잔을 채우면 가격이 1억원을 훌쩍 넘는다. 그만큼 고부가가치 제품이라는 의미다.

대만 업체들이 앞다퉈 제품 생산에 나서고 있지만 일본과 한국 업체의 기술력을 아직까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처럼 미세화·고용량화를 위한 기술 발전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MLCC 시장 점유율은 일본 무라타 44%, 삼성전기 21%, 일본 TDK 15%, 일본 다이요유덴 14% 순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전장화’로 성장성 커져

전자업계에서는 MLCC 수요가 한동안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트리플(렌즈 3개 장착) 카메라 스마트폰이 나오는 등 스마트폰 고급화가 지속되는 데다 자동차의 전장(電裝)화가 이뤄지면서 전장용 MLCC 수요가 급격하게 늘고 있어서다. 전기자동차 1대에는 1만~1만5000개의 MLCC가 들어간다. 단가도 스마트폰용보다 약 4배 비싸다.

선발 업체들은 대만 업체 등에 따라잡힐 가능성이 높은 범용 제품 대신 초소형, 고사양 전장용 MLCC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다. 글로벌 1위 업체인 무라타는 올해 정보기술(IT)용 보급형 MLCC 생산 능력을 50% 감축하고 전장용 MLCC 위주로 생산 체제를 재편하기로 했다. 2020년에는 보급형 MLCC 생산을 중단할 예정이다.

삼성전기는 2020년까지 전장용 제품 생산 비중을 1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부산 사업장 내에 자동차 전용 MLCC 라인을 증설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다양한 글로벌 자동차 부품 업체들에 MLCC를 납품할 수 있도록 전장용 제품 기술력과 생산량을 늘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 MLCC(적층세라믹커패시터)

multi-layer ceramic capacitor. 전자제품 회로에 전류가 일정하게 흐르도록 조절하고 부품 간 전자파 간섭현상을 막아주는 부품. 반도체와 함께 ‘산업의 쌀’로 불린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