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에 이어 터키가 신흥국 통화위기의 진앙으로 지목되고 있다. 미국 금리가 상승세를 탄 뒤 발생한 외국인 자금 유출이 진정되지 않으면서 통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고 있어서다. 23일(현지시간) 한때 달러 대비 터키 리라화 가치는 전날보다 5.5% 하락했다. 그 여파로 인접국인 폴란드의 즈워티화, 헝가리 포린트화, 체코 코루나화 가치도 1% 이상 하락했다.

결국 터키 중앙은행은 이날 긴급 금융통화위원회를 소집해 기준금리를 연 13.5%에서 16.5%로 3%포인트 올리면서 환율 방어에 나섰다. 기준금리 인상 발표로 환율이 다소 안정됐지만 독일 코메르츠방크는 “터키가 외환위기로 치닫고 있다”고 경고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터키 리라화 가치 하락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책이 금융시장에서 신뢰를 잃고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외환위기 문턱에 선 터키… 기준금리 3%P 인상 '환율 긴급 방어'
◆터키 ‘외환위기설’

올해 터키 경제는 높은 물가인상률과 부채 증가로 과열 조짐을 보이면서 금리 인상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오는 6월 대선을 앞두고 “금리 인상은 모든 악의 아버지요, 어머니”라며 금리 인상을 반대해왔다. 지난달 터키의 물가상승률은 연율 10.85%로 중앙은행 목표치인 5%의 두 배를 웃돌았다. 중앙은행이 유동성창구금리(LLW)를 0.75%포인트 인상했지만 시장 기대에는 못 미쳤다. LLW는 금융시장 마감 시간대에 금융기관이 자금을 조달하는 금리다.

고물가에 환율이 이날 한때 달러당 4.929리라까지 오르자 에르도안 대통령은 “통화정책에서 글로벌 거버넌스를 따르겠다”며 한 발짝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달러당 리라화 환율은 금리 인상이 발표되고서야 4.6리라 아래로 떨어졌다.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는 올 들어 20% 하락했다. 경상수지 적자와 단기 대외부채 급증도 문제다. 터키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 비율은 5.6%에 달했다. 터키 기업이 대부분 외화로 빌려온 단기 대외부채 규모도 지난 3월 GDP 대비 20%로 집계됐다. 환율 급등으로 단기 대외부채 상환 부담이 커졌다. 터키가 외환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터키당국이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데 실패한다면 금리 인상 효과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신흥시장 전문가 제이슨 투베이는 “터키 중앙은행은 최근 몇년 새 여러 번 금리를 크게 올렸으나 효과는 단기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신흥국 경상수지 적자 확대 경고

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 등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큰 국가의 수입대금 지급과 외채 상환 부담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흥국 리스크가 커지는 요인이다. 제임스 도널드 라자드애셋매니지먼트 신흥시장부문장은 다른 신흥국으로의 위기 전염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날 리라화 환율 급락은 다른 신흥국 통화가치에 대한 불안을 키우는 양상이다. 일부 중부 및 동부 유럽 국가의 통화와 브라질 헤알화,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 가치도 동반 하락했다. 블룸버그는 신흥국 가운데 미국 금리 상승의 여파에 가장 취약한 국가로 터키, 아르헨티나, 페루, 브라질, 인도네시아를 꼽았다. 씨티은행은 “달러 강세에 따른 중·동부 유럽의 리스크도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국자본 의존도가 높고 경상수지 등 경제 여건이 취약한 아르헨티나는 이미 큰 타격을 입었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는 올해 들어 4개월간 10% 이상 급락했고 아르헨티나는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30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인도네시아 루피아는 연초 대비 4%가량 떨어졌고 달러당 1만4000루피아를 돌파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지난 17일 4년 만에 처음으로 정책금리인 7일 만기 역환매조건부채권(역레포) 금리를 연 4.25%에서 4.50%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