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출신 친(親)노동계 성향 인사가 경총 부회장으로 올 때부터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한 경제단체 관계자)

“경제계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은 채 양대 노총과 손잡더니…경총이 사용자 대표단체 맞냐? 노동계 2중대지.”(대기업 H사 관계자)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양대 노총(한국노동조합총연맹·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합의해 국회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를 거부했다가 경제계와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경총은 결국 하루 만에 두 손을 들고 산입범위 논의 주체를 최저임금위원회로 되돌리자는 주장을 철회했다. 최저임금 이해 당사자가 가장 많은 중소기업중앙회에는 사전 협의도 없이 일방 추진한 데 대해 정중히 사과도 했다.

이에 따라 24일 예정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일각에서는 최근 교체된 경총 지도부 성향을 감안하면 이 같은 사태가 ‘일회성 해프닝’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하루 만에 두손 든 경총… "노동계 2중대냐" 비판
입장 철회한 경총, 해명 내놨지만…

경총은 23일 설명자료를 내고 “경총은 국회의 논의 과정을 존중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중기중앙회 등 경제단체와 협력해 최저임금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어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논의 중단’을 제안한 이유도 재차 설명했다. 경총은 “국회에서는 매월 지급하는 정기상여금과 현금성 숙식비를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논의 중”이라며 “이는 현실과 괴리가 너무 큰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내 주요 대기업은 정기상여금을 격월 또는 분기별로 지급하고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풀리지 않는 의문… 경총은 왜?

경총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문은 남는다. 경총의 해명이 100% 사실이라고 해도 최저임금 논의 무대를 국회에서 최저임금위로 옮기면 경총 회원사들에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핵심이다.

경제계는 물론 노동계 출신 인사들조차 고개를 갸웃하는 대목이다. 노총 출신의 한 정부 관계자는 “경총이 최저임금위에서 더 나은 결과를 뽑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면 노총을 너무 우습게 본 것”이라며 “경총으로선 우선 급한 불 끄겠다며 더 큰 것을 놓치는, 굳이 비유하자면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행동을 한 셈”이라고 말했다.

회원사들과 사전에 협의를 왜 안 했는지도 의문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국회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논의가 최선은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노동계가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다른 방도가 없기에 차선이라도 택하겠다는 것인데 국회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경총 지도부의 오만이자 착각”이라고 했다.

더구나 최저임금 영향을 받는 근로자의 85%가량이 중소기업·소상공인에 고용돼 있는데도 소관 단체인 중기중앙회와 한마디 상의 없이 결정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경총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 이날 오전 중기중앙회에 전화를 걸어 정중히 사과의 뜻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 해프닝? “앞으로가 더 걱정”

경총의 이번 ‘돌발 행동’은 손경식 회장과 송영중 상임부회장이 “사회적 대화는 이어가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밀어붙인 결과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지금 최저임금위로 논의를 다시 가져가면 산입범위 확대는 물 건너간다”는 실무진의 보고에도 경총 지도부가 강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경총 지도부가 사회적 대화를 강조하는 정부와 ‘코드 맞추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제기됐다.

경제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총 역사상 최초의 고용노동부 관료 출신인 송 부회장에 대한 재계의 우려가 현실화했다는 점에서다. 송 부회장은 노무현 정부 때 고용부 요직을 거친 친노동계 성향 인사로 분류된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외에도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탄력근로 확대, 산업안전 문제 등 켜켜이 쌓여 있는 노동현안에 경총이 사용자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백승현/도병욱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