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메리츠화재… 김용범의 '逆발상' 통했다
김용범 메리츠화재 부회장(사진)의 ‘역발상 경영’이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손해보험사의 핵심 수익원인 장기 인보험 실적(초회 보험료 기준)이 업계 1위 수준으로 성장했다. 여기에 계약 유지율은 오르고 손해율은 떨어지는 등 3대 지표가 모두 호조를 나타내고 있다. 손보업계에선 메리츠화재가 수십 년간 이어진 업계의 틀을 바꿀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김 부회장이 메리츠화재 사장에 취임한 것은 2015년 2월. 메리츠증권 사장으로 탁월한 성과를 내자 업계 5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메리츠화재를 맡긴 것. 그는 당시 경쟁사들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독립법인대리점(GA)에 주목했다. GA에 업계 최고 수준의 수수료를 제시하며 GA를 ‘우군’으로 끌어들였다.

영업 아웃소싱을 통해 GA가 메리츠화재 신계약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50.1%에서 지난해 59.9%까지 높아졌다. 업계에서는 ‘저렇게 공격적인 영업을 계속하다가는 큰일(사고) 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격적인 영업을 펼친 뒤 1~2년 정도 지나면 손해율 급등으로 문제가 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메리츠화재… 김용범의 '逆발상' 통했다
하지만 메리츠화재의 장기보험 손해율은 2015년 84.1%에서 지난해 80.8%로 오히려 떨어졌다. 지난 1분기에는 81.9%로 소폭 상승했지만 업계에선 여전히 낮은 편이다. 높은 수수료를 주는 대신 GA의 보험 인수 심사(언더라이팅)를 깐깐하게 한 결과다.

김 부회장은 GA와는 반대로 전속 설계사와 텔레마케팅(TM) 조직엔 ‘메스’를 가했다. 영업조직을 지역본부-영업점 체계로 간소화하고 초대형 거점점포를 도입했다. 책 한 권 분량이었던 수수료 체계는 ‘수당은 월보험료의 1000%, 시책(인센티브)은 100%’와 같이 최대한 간소화했다. ‘얼마를 팔면 얼마를 버는지’ 설계사들이 직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GA로 떠나는 설계사들이 줄었다. 대신 다른 보험사 설계사들이 메리츠화재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올 들어서도 월 평균 150명 이상이 새로 유입되고 있다. 전속 설계사 영업의 문제점이었던 유지율 악화는 유지율에 따라 성과급을 차별화하면서 막았다. 13회차 유지율은 2015년 75.5%에서 지난해 83.2%로 높아졌고, 올 1분기에는 84%까지 상승했다.

‘집토끼(전속 설계사)’와 ‘산토끼(GA)’의 이 같은 활약 속에 메리츠화재 실적은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장기 인보험 신계약 초회보험료는 2017년 1분기 173억원에서 올 1분기 304억원으로 75.7% 급증했다. 부동의 업계 1위였던 삼성화재와 선두 다툼까지 벌이고 있다. 장기보험은 질병과 상해, 운전자, 어린이 등을 보장하는 장기 보험을 일컫는다. 손보사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수익원이다.

메리츠화재는 최근 3년 연속 사상 최대 순이익을 올렸다. 1분기 순이익은 63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9% 감소했다. 하지만 이 역시 자세히 뜯어보면 ‘장사를 너무 잘한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계약 증가에 따라 7년치 비용 1200억원가량을 1분기에 한꺼번에 회계에 반영(상각)한 데 따른 것이다.

메리츠화재 안팎에선 내년 이후 순이익 개선은 더욱 가파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손보업계선 “내년 하반기부터 업계 판도 변화가 수치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 부회장은 “증권이든 자산운용이든 보험이든 경영의 본질은 같다”며 “경쟁 환경을 만들고 우수 직원에겐 충분한 인센티브로 보상하는 것이 우리의 성장 방식”이라고 말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