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적합업종 제도를 운영할 때는 그래도 중소기업 대기업 사람들이 같이 현장에 가보고 언성 높이며 토론도 했습니다. 논란은 많았지만 자율적 합의라는 것도 해보고….”

대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생계형 적합업종)이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사회적 합의는 사라지고 모든 것을 법적으로 해결하는 분위기가 더 커질 게 안타깝다는 얘기였다. 생계형 적합업종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골판지 등 인수합병(M&A) 작업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중소·중견기업을 인수하려는 대기업 진입이 원천 봉쇄되기 때문이다.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 "中企 M&A활로 막힐 것"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 "中企 M&A활로 막힐 것"
◆동반성장위 위상 축소되나

동반성장위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에 따라 2011년부터 중소기업적합업종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기본 정신은 합의를 통한 상생이었다. 중소기업들이 적합업종 지정을 요구하면 대기업, 중소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다. 서로의 생각을 경청하기도 했다. 불만은 있었지만 그래도 받아들였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자리는 사실상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대기업 진입이 5년간 원천적으로 금지되기 때문이다. 또 위반하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시정명령을 내리고, 매출의 5% 이내에서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는 조항이 추가됐다.

형식적으로는 동반성장위 역할이 남아 있다. 소상공인 단체가 현행 중소기업적합업종 품목에 포함된 73개 업종을 중심으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요구하면 동반성장위가 중기부 장관에게 이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해놨다. 하지만 다음 절차가 다르다. 동반성장위에서 논의하는 것이 아니다. 중기부 장관이 15명으로 이뤄진 심의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적합업종을 지정하게 된다. 동반성장위가 중소기업적합업종을 계속 담당한다고 하지만 사회적 합의를 지향했던 동반성장위는 신청 창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동반성장위가 (생계형 적합업종) 신청을 추천하지만 형식적인 절차”라며 “강력한 보호막인 생계형 적합업종을 선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동반성장위가 지정한 적합업종 가운데 기간이 만료된 단체가 우선적으로 생계형 적합업종 신청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중소기업적합업종 73개 가운데 전통떡 순대 두부 등 47개 품목이 지정 만료된 상태다.

◆생계형 적합업종 시장 위축될 듯

업계에서는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시장 규모가 축소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시장 확장 능력이 있는 대기업의 신규 시장 진입이 금지되는 데다 기존에 진입한 기업이 규모를 확장하는 것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골판지업계에서는 태림포장 영풍제지 등의 M&A에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매출 5657억원을 기록한 태림포장은 골판지 시장 점유율 20%선을 기록하고 있는 국내 1위 업체다. 택배 수요가 많은 대기업과 아세아제지 등 동종업계에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한 골판지 업체 관계자는 “골판지는 택배 수요 증가 등에 힘입어 매년 성장세를 보이는 분야”라며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대기업의 인수전 참여가 사실상 막힌다”고 말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