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엘리엇 같은 헤지펀드의 공격이 먹힌다는 시그널(신호)을 주게 될까 걱정입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주주총회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에 한 대기업 임원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엘리엇매니지먼트를 비롯한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앞으로 한국 기업을 공격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우려다. 그는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기업들의 약한 고리를 집요하게 찾아 그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행태를 보인다”며 “한국 기업이 좋은 먹잇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여러 헤지펀드가 달려들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이 정부의 압박에 쫓기듯 지배구조를 재편하고 있어서 헤지펀드의 2차, 3차 공격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다.

정부가 헤지펀드를 위한 ‘판’을 깔아주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기업에 지배구조를 개편하라고 압박하는 것도 모자라 대주주의 손발을 묶는 장치를 계속 만들고 있다는 불만이다. 정부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 등의 내용이 담긴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대부분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특히 두 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1주에 새로 뽑은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해 한 명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도록 하는 집중투표제는 헤지펀드에 ‘새로운 무기’를 쥐여주는 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현행 상법도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개별 회사가 정관에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지 않는다’고 규정하면 이를 시행하지 않아도 된다. 정부는 이를 의무화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경제계 관계자는 “외국 투기자본이 ‘몰아주기 투표’를 통해 원하는 사람을 이사로 앉히고 경영에 간섭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도 최근 의결권 행사지침에 집중투표제를 도입했다. 공교롭게도 엘리엇은 지난달 현대차그룹에 집중투표제 도입을 요구했다. 국민연금이 헤지펀드에 힘을 실어줬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