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부회장 "소통 부족 절감… 시장의 쓴소리 반영하겠다"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해온 현대자동차그룹이 결국 오는 29일로 예정됐던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임시 주주총회를 취소하고 대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주총 ‘표대결’에서 승산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끼어든 데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에 이어 현대모비스 2대 주주(지분율 9.8%)인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을 맡고 있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이 잇따라 ‘반대 권고’를 내놓으면서 발목이 잡혔다는 분석이다.

현대차그룹이 당장 새로운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주총 무산에 따른 시장 신뢰 손상 등 ‘후폭풍’도 작지 않을 전망이다. 지배구조 개편안에 ‘OK 사인’을 준 정부도 난감한 처지가 됐다.

외국인 주주 대부분 ‘반대’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는 21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오는 29일 임시 주총을 열기로 했던 계획을 철회하기로 의결했다. 국내외 주주들에게 영향력이 큰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루이스 등이 잇따라 외국인 주주(48.57%)에게 반대표를 행사하라고 권고하면서 표대결에서 불리해졌다는 판단에서다. 국민연금 의결권 자문을 맡은 기업지배구조원마저 반대 권고에 나선 게 ‘결정타’가 됐다. 국민연금이 손을 들어줘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마당에 국민연금의 찬성마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계열사 등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은 30.17%다. 주총 안건 통과를 위해 현대차그룹 측은 약 20%의 지분을 더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지분 절반 가까이(48.57%)를 쥔 외국인 투자자는 이미 대부분 반대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보유한 외국인 주주 90% 이상이 이미 분할·합병안에 반대 의사를 나타낸 것으로 안다”며 “아직 의사 표시를 하지 않은 외국인 주주도 반대 의견을 낼 분위기”라고 전했다.

‘삼성 트라우마’도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이 분할·합병안에 찬성하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처럼 논란이 불거질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현대차그룹이 주총을 포기하고 사실상 ‘백기’를 들게 된 배경이다.
정의선 부회장 "소통 부족 절감… 시장의 쓴소리 반영하겠다"
거센 후폭풍 예고

후폭풍은 거셀 전망이다. 우선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통한 순환출자 고리 해소가 일단 물 건너가게 됐다. 현대차그룹은 당초 현대모비스를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현대차그룹이 제시한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비율은 0.61 대 1이었다. 분할·합병 과정을 거친 뒤 정몽구 회장과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사진)이 계열사의 현대모비스 보유 지분 23.3%를 사들여 계열사 간 순환출자 고리를 끊겠다는 구상이었다.

정 부회장은 “주주 및 시장과 소통이 많이 부족했음을 절감한다”며 “다양한 견해와 고언을 겸허한 마음으로 검토해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구조개편 방안도 주주와 시장의 충분한 신뢰와 지지를 확보하지 않고서는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며 “자동차산업 본연의 경쟁력과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고 주주 환원으로 선순환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일단 ‘없던 일’이 되면서 주주 신뢰에도 ‘금’이 가게 됐다. 정 부회장이 엘리엇의 공세에 “흔들리지 않겠다”며 정면돌파 의지를 나타냈지만, 결론적으로 주주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을 믿고 따라온 장기 투자자는 타격이 더 클 것이란 예상이다.

시장 혼란도 우려된다. 임시 주총이 무산됨에 따라 지배구조 개편 절차에 맞춰 투자 전략을 짜온 기관투자가도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IB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기존 지배구조 개편안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주주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 것”이라며 “이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부도 체면을 구기게 됐다. 그동안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현대차그룹의 기존 지배구조 개편안에 긍정적 평가를 내렸는데도 주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해서다.

장창민/이지훈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