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재팬의 K푸드 성장 스토리는 코스트코에서 시작됐다. 코스트코는 일본 내 점포 수가 26개뿐이지만 유통업계의 ‘안테나숍’으로 통한다. ‘코스트코에서 성공하면 다른 데서 무조건 잘 팔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코스트코는 또 ‘1카테고리 1제품’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경쟁사의 비슷한 제품과 치열하게 싸워볼 수 있는 시험장이라는 얘기다.
일본인도 "왕교자·비빔밥, 오이시~"… CJ재팬, 年18% 고속성장
지난달 말 찾은 일본 지바현 코스트코 식품 코너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10년간 베스트셀러 톱3 안에 들었다는 코스트코 자체상표(PB)인 불고기 제품을 사기 위해서다. CJ재팬은 15년 전부터 이 불고기의 양념을 공급했다. 한식을 잘 모르는 일본인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기 위한 우회적 방법이었다. 한 주부는 “방송에서 많이 소개됐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며 “가족과 함께 먹기 위해 정기적으로 구매한다”고 말했다.

◆불고기로 시작한 ‘한식 알리기’

코스트코의 불고기 양념은 K푸드 성공의 씨앗이 됐다. 장수 히트상품이 되자 상품기획자(MD)가 “CJ의 다른 제품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현재 비비고 왕교자와 수교자는 일본 1위 브랜드를 위협하고 있다. 쁘띠첼 미초는 ‘우유에 타 먹는 과일식초’로 입소문이 나며 1년째 부문 1위를 기록 중이다. 임경일 CJ재팬 식품사업 부문장은 “15년 전 불고기 소스로 공략한 일본 식품 시장에서 비비고 만두, 한식 비빔밥 키트, 과일 식초, 피부 유산균 제품까지 골고루 잘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일본에서 한식이 인기를 끌지 못한 이유는 현지 라이프 스타일에 맞지 않는 포장과 자극적인 매운맛 때문이었다. 조리법을 모르는 일본인에게 고추장, 된장, 김치 등을 파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CJ재팬은 CJ제일제당 가정간편식(HMR)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코스트코가 해마다 2개월간 한 지역에 3일씩 전국을 돌며 테스트 판매를 하는 ‘로드쇼’에 적극 참가했다. 길에서 직접 시식·시음행사를 하면서 소비자 반응을 본 뒤 신제품 출시로 이어갔다. 한식 비빔밥 키트가 대표적인 제품이다. 임 부문장은 “일본에서 한식 선호도 1위가 비빔밥이었지만 각종 나물 등을 직접 요리하지 못한다는 것을 파악했다”며 “비빔밥 간편식을 현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개발했다”고 말했다. 비비고 한식 비빔밥 키트는 출시 1년 만에 연 100억원의 매출을 내고 있다.

올해는 부침가루와 채소, 적정량의 물까지 한 포장에 들어있는 ‘비비고 한식 지짐이’와 볶기만 하면 되는 ‘비비고 잡채’도 출시한다. 30대 주부인 스리카 에리는 “비비고로 인해 한식이 어렵고 복잡하다는 생각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HMR에서 김치·조미료까지 확장

일본의 K푸드 열풍은 단순 식품 판매가 아니라 한류와도 연관돼 있다. 잠시 인기가 시들했던 K팝과 K드라마가 다시 큰 인기를 끌며 K푸드 열풍으로 연결됐다. CJ재팬은 매년 전국에서 로드쇼를 여는 등 축제 개념의 한식 전파에 앞장섰다. 페이스북 등을 통해 로드쇼 동선을 소비자들이 공유하며 따라다니거나 ‘우리 지역에도 와달라’고 요청하는 팬덤도 생겼다.

현지 소비자 입맛에 맞춘 제품 개발도 K푸드를 진화하게 한 요인이다. CJ재팬은 일본 소비자 입맛에 맞춰 마늘은 줄이고 생강 향을 더한 수교자를 출시했다. CJ재팬은 이달 일본에 연구개발(R&D)센터를 세운다.

유통 채널도 대형마트, 편의점 등으로 넓히고 있다. CJ재팬은 지난해 일본 2위 편의점 브랜드인 패밀리마트에 도시락 등 400여 개 메뉴를 제안했고, 이 중 53개가 채택됐다. 편의점업계는 1~2개월 안에 신메뉴가 싹 바뀔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CJ재팬 관계자는 “당장 우리 제품 판매 촉진을 위한 마케팅이 아니더라도 어떤 제품이 잘 팔리는지 알아보기 위해 동치미 냉면, 비빔냉면 등 매달 20여 개 메뉴를 제안했다”며 “일본 최대 유통 채널인 이온마트, 편의점인 패밀리마트에 입점하는 등 토종 유통채널 매출 비중을 올해 40%까지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지바=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