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 통해 中企 지원금 '꿀꺽'… 10회 이상 받은 회사도 107개
매년 중소기업 지원 예산은 수십조원에 이른다. 정책자금, 운영자금, 연구개발지원자금 등이다. 이 금액은 매년 늘고 있다. 이 돈을 ‘눈먼 돈’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이 자금을 지원받게 해주고 고율의 브로커 수수료를 챙겨가는 전문회사가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런 루머가 사실로 드러났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일 중소기업자금 중복 지원 실태를 발표하고, 브로커로 추정되는 14개 회사를 수사 의뢰했다.

심각한 중복 지원

중기부는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정부 각 부처로부터 연구개발 예산을 받아간 중소기업을 조사했다. 그 결과 10회 이상 자금을 지원받은 기업이 107개에 달했다. 이들이 받아간 금액은 3649억원으로 전체 지원금액의 22.4%에 달했다. 이 중 9개 기업은 16~22번이나 연구개발 예산을 받아갔다.
브로커 통해 中企 지원금 '꿀꺽'… 10회 이상 받은 회사도 107개
연구개발뿐 아니라 정책자금(운전자금) 지원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최근 10년간 운전자금을 25억원 이상 받은 기업이 326개에 달했다. 이들 기업은 평균 여섯 번 이상 지원을 받았다. 전체 평균(1.37회)보다 4.5배나 많은 지원을 받았다. 운전자금 지원을 50억원 이상 받은 업체도 62개에 이르렀다. 금리가 연 2~3%로 낮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이 제도를 활용했다는 분석이다. 심각한 중복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중기부의 조사 결과다.

이런 중복 지원을 받은 업체들이 매출이나 고용이 늘었는지도 조사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연구개발 예산을 10회 이상 받은 107개 기업 중 21개사는 지원받기 전에 비해 매출이 감소했다. 이 중 54개사는 성장률이 지원받은 전체 기업 평균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다. 25억원 이상 정책자금을 받아간 기업들의 연평균 매출 증가율은 4.33%로 한 번 이상 자금을 받은 업체 전체 평균(4.33%)과 같았다.

중기부 관계자는 “그동안 연구개발 및 정책자금 지원이 비효율적이고, 특정 기업에 집중돼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 조사 결과”라고 말했다. 다만 중기부는 이들을 대상으로 선정 평가과정에서 부정한 사례가 있었는지도 조사했지만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원스톱 브로커’도

중기부는 또 브로커의 존재도 확인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정상적인 컨설팅 업체와 달리 브로커 업체들은 성공 시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1.5~10%의 정부자금을 떼어갔다”고 말했다. 10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으면 1억원을 브로커 몫으로 떼어준 회사도 있었다는 얘기다. 중기부는 이런 브로커 업체 14곳을 수사 의뢰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성공 시 수수료라는 조건을 거는 업체는 불법 브로커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브로커들의 주요 먹잇감은 연구개발자금이었다. 이 자금은 받아서 과제만 해결하면 정부에 원금을 갚을 필요가 없다. 연구개발자금을 전문적으로 따내는 한 업체는 과제 선정에서부터 결과 보고까지 ‘턴키’로 해결해주는 대가로 정부자금의 10%를 가져가기도 했다. 연구개발자금을 받고도 실제로 연구개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밀린 대금을 치르거나 사적으로 유용한 정황도 확인됐다.

저금리로 정책자금을 빌려주겠다며 중소기업에 먼저 접근하는 업체도 있었다. ‘중소기업진흥공단’과 같은 정부 기관의 이름을 내걸거나 비슷한 이름으로 활동하는 곳도 있다는 게 중기부 관계자의 얘기다.

중기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우선 일정한 금액 이상이나 일정 횟수 이상 중소기업 정책자금 지원을 받을 경우 정책자금을 못 받게 하는 졸업제도 신설을 검토하기로 했다. 정책자금 지원 성과에 대한 평가체계도 다시 마련할 계획이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