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정부관여 문제제기…"정식 ISD 절차 불가피"
"정부, ISD 경험 축적…다양한 대응논리 짤 것" 전망도
중재전문가 "엘리엇 투자피해 소송… 한국, 수천억 물어줄 수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중재의향서를 전달한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제도(ISD) 개시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엘리엇의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적은 만큼 정식 ISD 절차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ISD는 해외투자자가 상대국 제도 등에 의해 피해를 봤을 때 국제적 중재기관의 중재 등 분쟁해결 절차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

통상 수년이 소요되는 ISD에서 한국 정부가 패소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면 최대 수천억원에 달할 수 있는 피해 배상금을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수도 있다.

다만 ISD 진행 과정에 변수가 많은 데다 한국 정부가 여러 건의 ISD 처리 경험을 쌓으면서 대응력을 키운 터라 엘리엇의 공격에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만만치 않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국제통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노주희 변호사는 "현재 알려진 내용만으로는 엘리엇이 어떤 주장과 근거로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는지 알기 어렵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노 변호사는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합병중단 가처분 신청에 대한 사법부 판단, 박근혜 정부의 개입 중에서 일부 혹은 모두를 문제 삼았을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다만 한국 정부로선 엘리엇이 낸 중재의향서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고, 결국 정식 중재 신청 절차로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내다봤다.

이어 "최악의 시나리오는 삼성 합병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잘못이 인정돼 ISD에서 패소하고 국민 세금으로 막대한 돈을 물어줘야 하는 사태"라며 "정부기관이 ISD 제소를 의식해 정책집행을 소극적으로 할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엘리엇의 손해배상 요구액이 수천억원에 달할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약 7%를 보유한 주요 주주였다.

당시 합병비율은 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로 제시됐으나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적정 합병비율을 1(제일모직)대 0.95(삼성물산)라고 평가했다.

이를 토대로 계산한 엘리엇의 손해액은 최대 3천억원대에 달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국제중재 전문가인 법무법인 광장의 임성우 변호사도 정부가 ISD를 피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대응 매뉴얼에 따라 차분히 풀어가면 잘 대응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 변호사는 "정부가 어떤 방어논리를 펴며 대응해 나갈지는 구체적인 청구원인과 근거조약을 보지 않고서는 예단하기 어렵다"면서도 "정부가 모든 행위를 다 책임지는 게 아닌 만큼 다양한 각도로 항변할 논리를 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그동안 ISD 관련해 여러 경험을 쌓았고 준비를 해왔다"고 덧붙였다.

엘리엇의 중재 신청으로 정식 ISD 절차가 시작될 경우 론스타와 하노칼, 다야니에 이어 네 번째로 정부가 ISD 대응에 나서는 사례가 될 전망이다.

5조원대 규모였던 론스타 ISD는 2016년 최종변론을 끝내고 중재판정만 남겨 놓고 있다.

하노칼은 2016년 청구를 취하했으며, 다야니 사건은 진행 중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