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간 금융회사의 고용창출 실적을 평가하는 ‘금융권 일자리상황판’을 개발해 이르면 올해 말부터 금융권 고용정책에 활용할 계획이다. 은행·보험·증권사 등 금융사의 고용창출 등 일자리 기여도를 평가하는 ‘금융일자리 지표’를 만들겠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취임 직후 청와대에 설치한 일자리상황판의 ‘금융권 버전’이다.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취지의 이 같은 일자리상황판이 로봇 은행원까지 등장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금융환경 변화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靑 본떠 '금융 일자리 상황판' 만들겠다는 금융위
◆“금융사가 일자리 확대 기여해야”

금융연구원은 금융위원회가 발주한 ‘금융회사 일자리창출 기여도 평가지표 개발 및 활용방안’ 연구용역을 지난달부터 수행하고 있다. 금융연구원은 오는 7월까지 지표 개발을 마무리해 최종 보고서를 금융위에 제출하겠다는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민간 금융권의 일자리 창출 기여도를 평가할 수 있는 평가지표가 없기 때문에 객관적인 성과 분석이나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기 어렵다”며 지표 개발 이유를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민간 금융회사의 일자리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금융위의 설명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취임 초기부터 일자리 확대에 이바지하는 생산적 금융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평가지표는 금융권 자체 일자리 창출 기여도와 다른 산업에 대한 기여도 등 두 분야로 나눠 개발된다. 우선 민간 금융사의 신규 고용 및 전체 고용 증감률, 명예퇴직의 신규 고용 연계율 등 자체 일자리 실적을 평가하는 양적지표를 개발한다. 또 △유연근무 등 근로여건 △전직 지원 △비정규직의 부당한 차별 해소 등 질적지표도 개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고용유발효과가 높은 분야에 대한 지원 실적 및 금융상품 개발 등 민간 금융사가 다른 산업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지표도 개발된다. 예를 들어 일자리 창출에 자금을 얼마나 지원했고, 관련 상품을 몇 개 출시했는지에 대한 지표를 개발하는 방식이다.

◆“4차 산업혁명에 역행” 지적도

금융위의 이 같은 계획에 민간 금융사들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정부가 일자리 지표를 통해 금융사 고용실적을 순위로 매긴 뒤 고용창출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은 온라인 및 모바일 거래가 급증해 매년 인력을 줄여오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정보기술(IT)에 기반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인공지능(AI)을 적용한 로봇 은행원까지 등장하는 상황에서 금융환경 변화를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3년 말 8만7746명에 달했던 시중·지방은행 임직원 수는 지난해 말 7만7756명으로, 4년간 1만 명가량 줄었다. 은행들이 잇따라 오프라인 점포를 축소하고 대규모 명예퇴직을 시행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다. 같은 기간 보험사 임직원 수도 5만1908명에서 4만7533명으로 감소했다. 2021년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두고 보험사들이 점포 축소를 통한 비용 절감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일자리 기여도가 높은 금융사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기여도가 낮은 금융사에 불이익을 주는 건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정부가 단순히 일자리를 얼마나 창출했는지에 대한 양적 평가에만 치중한다면 전통적인 금융산업에서 디지털금융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