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산업 매출 확대 기대…긍정 영향 관측 속 당장 효과는 '글쎄'
노동집약 업종, 보충인력 채용 부담에 한숨…방송 등 특례제외 업종 비상
[근로시간 단축] ③외식·레저 '미소'… 건설·제조 '울상'
오는 7월부터 법정 최장 근로시간이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되는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손익 계산과 대응에 분주하다.

외식·영화·공연 등의 업종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여가를 즐기면서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워라밸)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수혜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반면에 노동집약 산업인 제조업과 건설업을 비롯해 버스운송업 등은 인건비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 "저녁이 있는 삶 설렌다"…외식·영화 '함박웃음'
근로시간 단축의 대표적인 수혜업종으로는 외식, 영화·공연, 여행·관광 관련 업종 등이 꼽힌다.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직장인들이 퇴근 후 다양한 여가·취미 활동을 하면서 소위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외식업종은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할 분야로 꼽힌다.

퇴근 시간이 빨라지면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에는 손님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외식업체들은 달라지는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다양한 프로모션을 준비하고 있다.

롯데리아와 엔젤리너스 등을 운영하는 롯데지알에스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외식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며, 7월이 마침 여름 성수기여서 온·오프라인과 홈 서비스 전용 등 다양한 형태의 이벤트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대표적인 여가 문화인 영화·공연 업체들도 관람 수요 증가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내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문화 생활을 즐기려는 욕구가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직장인의 저녁 여유시간이 늘면 관람객도 증가할 것"이라며 "7월 이후 관객 추이를 보고 상영시간대 조정이나 관련 이벤트 진행을 고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클래식 음악 전용 공연장인 롯데콘서트홀 관계자도 "근로시간 단축으로 퇴근시간이 앞당겨지면 평일 저녁 공연 관객이 늘어날 것"이라며 "제도가 정착될 경우 오후 8시 시작하는 평일 저녁 공연시간을 30분 앞당기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행·레저도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수혜를 기대하는 업종이다.

저비용항공사(LCC)인 제주항공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주말을 전후로 휴가를 내 가까운 해외여행지로 떠나는 수요가 더 늘어날 것"이라며 "이를 겨냥해 기존 노선 증편이나 지방발 근거리 국제선 노선 확대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광·숙박 업계도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수혜를 기대하고 있으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휴일이 하루 늘어난 주5일제 시행 때보다 효과가 덜하거나 효과가 나타나더라도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한 대형 여행사 관계자는 "여행 수요는 대체휴일 등 휴일 증가에 더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며 "근로시간 단축이 중·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이지만 평일에 약간 일찍 퇴근하는 정도로는 여행객이 당장 획기적으로 늘 것 같지 않다"고 내다봤다.

국내 한 특급호텔 관계자도 "근로시간 단축이 여행·숙박 업계에 긍정적이라는 데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지만 호텔 투숙객이 당장 눈에 띄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유통업계도 비슷하다.

주5일제 시행 때처럼 스포츠·레저용품이나 나들이용 물품 수요가 늘겠지만 본격적인 매출 효과로 이어지려면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주중 근무 시간이 줄면 아무래도 주말에 집에서 쉬기보다는 근교 나들이나 레저를 즐기려는 수요가 늘겠지만 근로시간 단축이 소비트렌드 변화로 나타나는 것은 몇 달간 정착기를 거치고 나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근로시간 단축] ③외식·레저 '미소'… 건설·제조 '울상'
◇ "보충 인력 뽑기 어려운데"…건설·운송 '한숨'
건설과 운송서비스업, 제조업 등 노동력 투입이 많은 업종은 인건비 걱정에 오히려 한숨을 쉬고 있다.

근무시간이 줄어들면 인력을 새로 보충해야 하는데 업무 능력이 비슷한 새로운 인력을 뽑기는 '하늘의 별 따기'로 여겨진다.

인천의 화장품 용기 제조업체 '연우'의 기중현 대표는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 "근로시간 단축을 적용하면 근로자들은 실질임금이 줄어 다른 업종으로 대량 이직이 우려된다"며 "플라스틱 사출 업종은 3D 업무로 인식돼 있는데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인력 충원을 할 수 없어 설비가동을 중단할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호소했다.

버스운송 업계는 필요한 운전사 충원이 어려울 경우 노선을 단축·폐지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경기도가 버스운송사업조합에 가입해 있는 버스업체 58곳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운전기사의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으로 단축되면 8천여 명의 기사를 더 뽑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회사 사정을 고려하면 실제로 뽑을 수 있는 인원은 1천여 명 정도에 그쳐 결국 기사 부족으로 운행 노선이 감축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대표 노동집약 산업인 건설업계도 근로시간 단축으로 해외프로젝트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국내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해외 플랜트건설 등을 놓고 외국계 기업과 경쟁하는데 지금도 원가 경쟁이 힘든 상황"이라며 "그런 상황에서 인건비 등 간접비가 늘어나면 경쟁이 될 수가 없다"고 성토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에서야 공공기관 등이 발주할 때 주 52시간 단축분을 반영해줄 수도 있겠지만 외국 기업들이 한국 노동법 바뀌었다고 입찰가에 사정을 봐주진 않는다"며 "정부가 해외에 나간 기업의 얘기도 들어보고 순차적으로 제도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사실상 무제한 노동이 가능했으나 이번에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방송·광고업계 등은 법 시행이 유예된 1년 동안 대책 마련에 분주할 전망이다.

특례업종에서 폐지된 업종은 방송·광고·통신·우편업 등 21개다.

해당 업종은 300인 이상 사업장에 해당하는 경우 주당 52시간 근로규정을 내년 7월에 적용받는다.

이런 업종에서는 프로젝트 마감 등이 임박한 '피크타임'에 노동자들의 밤샘 노동이 다반사여서 개선 목소리가 높았다.

유연근무제 도입 등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업종도 있다.

게임 출시 전 장시간 집중적으로 근무하는 이른바 '크런치 모드' 탓에 과로사 사례가 잇따라 나왔던 게임업계는 상위 게임사를 중심으로 52시간 단축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형 게임사를 중심으로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유연 출·퇴근제 등을 도입하고 사전에 신청해야 연장근무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연장근무를 원칙적으로는 금지하는 방안 등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게임 서비스나 서버 관리 등이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업무인 만큼 과거에는 과로를 당연시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분위기"라며 "지금은 유연한 근무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에 게임업계가 가장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