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사' 쳇바퀴 생활 변화 기대…"정해진 시간에 효율적 근무"
"급여 줄어 생활 어려워질 것", "돈 못 받고 일만 더 할 것" 우려도
업종·근무환경 따라 '천차만별' 예상…"관리감독이 성패 좌우"
[근로시간 단축] ①'저녁 있는 삶'… 직장인들 기대 속 우려도
[※ 편집자 주 = 주당 법정 근로시간 한도를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오는 7월 1일부터 종업원 30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됩니다.

직장인들은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 실현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급여 감소를 우려하는 분위기입니다.

업계는 인력 수급난과 그에 따른 경영상 어려움을 걱정합니다.

근로시간 단축 시행을 앞두고 사회 각 분야의 실태와 분위기, 제도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킬 방안과 외국 사례 등을 심층 취재해 관련 기사 8꼭지와 전문가, 직장인 등 관계자 인터뷰 8건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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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단축] ①'저녁 있는 삶'… 직장인들 기대 속 우려도
"결혼한 지 6개월 된 신혼인데, 아내와 저녁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환영할 일이지요.

야근하느라 회사에서 저녁 먹고 들어가면 아내는 늘 혼자 먹어 미안했거든요.

"
대기업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황모(31)씨는 주당 법정 근로시간 한도가 52시간으로 줄어든다는 소식에 일단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가 다니는 회사는 오는 7월1일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는 종업원 300인 이상 사업장이다.

홈쇼핑 업체 직원 박모(34·여)씨도 '평일에는 회사-집, 주말에는 잠'을 반복하던 팍팍한 삶에 변화가 생길 것 같다며 기대를 나타냈다.

박씨는 "직장인으로 일한 5∼6년간 '저녁이 있는 삶'은 거의 포기하고 살았다"며 "직장인 중 시간을 허투루 쓰는 사람도 많은데 정해진 시간에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이 맞고, 열심히 오래 일하려면 워라밸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 ①'저녁 있는 삶'… 직장인들 기대 속 우려도
노동시간이 길기로 악명 높은 한국 직장인들이 이처럼 '마침내 워라밸이 실현된다'는 희망에만 부풀어 있을 것 같지만, 우려 또한 만만찮다.

대기업 직원 황씨도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삶의 질 개선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기본급이 적고 시간외수당이 많은 급여체계예요.

근무시간이 줄면 수당이 줄어 월급이 많이 감소하겠죠. 그리되면 신혼집을 마련하려고 빌린 대출금을 갚느라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할 것 같아요.

"
황씨는 "현재 기본급이 170만원인데, 기본급만으로 월급을 준다면 회사를 옮길 계획"이라며 "근무시간이 줄어도 내 일은 내가 해야 해 업무량까지 준다는 보장이 없으니 차라리 스트레스가 덜한 직장으로 이직하겠다"고 말했다.

'오래 일하고 더 벌어야' 의식주가 해결되는 직장인 가운데는 황씨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가 적지 않다.

대기업 계열사 직원 황모(32)씨는 "돈이 없어 집에 가서 쉬기나 하는 '저녁 있는 삶'은 있으나 마나"라며 "근무시간 단축으로 월급이 줄면 언제 결혼자금을 모으고 집을 마련하겠나.

이제는 더 일하고 싶어도 못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매달 20만원을 내고 취미로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다는 중견 건설사 직원 양모(32)씨는 "여가를 즐기려 해도 돈이 필요하다"며 "법정 근무시간이 줄면 임금도 줄어들 텐데 벌이가 충분한 사람들에게나 좋은 일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법정 근무시간이 줄어도 '실질적 근무시간'까지 단축하기는 어렵다고 보는 직장인도 많다.

업무 목표량이 과거와 달라지지 않는다면 근무시간으로 기록하지 않은 채 일을 더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얘기다.

기업체 인사팀에서 근무하는 서모(29·여)씨는 "업무 특성상 주 3∼4회, 총 12시간 이상 야근해 왔다"며 "저녁 자유시간이 늘기보다는 야근도 못 찍고, 돈도 못 받으면서 '티 안 나게' 일해야 하는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건설사 직원 양씨는 "우리 회사는 직원마다 업무 목표치를 정하고 정기적으로 체크해 성과급 액수를 정한다"며 "법정 근무시간이 줄면 결과적으로 임금이 줄거나 목표치 달성을 위해 근무 외 시간에도 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혼 직장인 사이에서는 "대리운전이나 음식 배달 등 '부업'을 구해야 생활이 유지되지 않겠나"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고 한다.

업종에 따라 근무환경이 천차만별이어서 일률적으로 주 52시간 한도를 적용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법규 준수 여부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는다면 편법·탈법적 운영 등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홈쇼핑 업체 직원 박씨는 "홈쇼핑 방송은 편성 상황에 따라 늦은 시간이나 주말까지 일하는 경우도 많다"며 "아직 회사에서는 그와 관련해 명확한 지침이 없어 막연히 '7월이 되면 정신없겠다'는 걱정만 할 뿐"이라고 전했다.

중견 건설업체에서 일하는 한모(35)씨도 "설계·시공 과정 조율 등을 외부와 협의하는 일이 잦아 하루 12시간 근무도 허다하다"며 "현장 특성상 영업·사무직도 일찍 출근해야 해 건설업계에서 법이 지켜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씨는 "고용노동부가 처음부터 강하게 관리·감독하지 않는다면 법이 제대로 지켜질지 의문"이라며 "대기업은 몰라도 중소기업은 출퇴근 기록 관리를 제대로 하는지, 주 52시간을 지키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겠나"라고 되물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