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1조원어치에 가까운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했다.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사주를 소각하는 것은 2004년 이후 14년 만이다. 지배구조 개편을 앞두고 주주들의 지지와 신뢰 확보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모비스의 인적 분할 및 현대글로비스와의 합병(모듈·애프터서비스 부문) 안건이 상정되는 다음달 29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현대차 지분 20.8%를 보유한 현대모비스의 국내외 주주들을 배려하고 이들의 동의를 끌어내기 위한 포석도 깔려 있다는 관측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계열사들이 들고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 23.3%를 사들여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고 경영투명성을 높이기로 했다.
현대차 "1兆 자사주 소각해 주주가치 제고"
◆자사주 854만 주 소각

현대차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보통주 661만 주, 우선주 193만 주 등 854만 주를 소각한다고 27일 발표했다. 현대차가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1682만 주)의 절반을 웃도는 규모다. 발행 주식 총수(2억8547만 주)로 따지면 3% 수준이다.

현대차는 보유 중인 자사주 가운데 보통주 441만 주, 우선주 128만 주 등 569만 주를 소각하기로 했다. 보통주 220만 주, 우선주 65만 주 등 285만 주는 추가로 사들인 뒤 소각할 예정이다. 각각 약 5600억원, 약 4000억원으로 총 9600억원 규모다. 기존 보유 자사주(569만 주)의 소각시기는 7월27일이다. 별도로 사들일 자사주(285만 주)는 매입 완료 시점에 소각하기로 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 금액은 향후 장부가액 변동이나 주가 움직임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자사주 소각 결정은 그동안 추진해온 주주가치 제고 및 주주환원, 투명경영 확대 방침에 따른 것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현대차는 2015년 투명경영위원회를 설치한 데 이어 2016년에는 기업 지배구조 헌장을 제정했다. 지난해에는 잉여현금흐름의 30~50%를 배당하겠다는 중장기 배당계획도 내놨다. 내년 초부터는 주주들의 추천을 받아 주총에서 ‘주주권익보호담당 사외이사’를 선임하기로 했다.

◆“모비스 주주 가치 제고 효과”

현대차가 1조원에 달하는 자사주를 태우기로 한 것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주주가치를 높이려는 조치라는 게 시장의 평가다. 현대차 주주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중심의 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소외된 데다 최근 실적 악화로 주식 가치 상승 기회를 놓쳤다는 불만이 적지 않았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자사주 소각으로 현대차의 주당 가치가 약 3%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 비율에 불만이 있는 기존 현대모비스 주주들을 달래기 위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 지분을 소유한 현대모비스 주주들은 현대차의 자사주 소각으로 간접적인 주식 가치 제고 효과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차그룹의 지주사 체제 전환(현대차와 현대모비스 합병) 및 자사주 전량 소각 등 주주환원 확대를 요구하고 나선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를 의식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증권가 일각에서 흘러나온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규모 자사주 소각 결정은 사나흘 만에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 내부적으로 오랫동안 검토해온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장창민/하헌형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