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간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경제민주화 관련 상법 개정안을 정부가 다시 들고나오자 경제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영권 방어책을 함께 도입해야 한다”고 했던 기존 정부 입장을 1년 만에 뒤집었기 때문이다. 최근 대한항공 대주주 일가의 ‘갑질 파문’이 확산되면서 상법 개정안이 올 하반기 국회의 주요 쟁점 법안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 '재벌개혁'에 코드 맞춘 법무부
25일 국회에 따르면 법무부 상사법무과는 지난 3월 ‘상법 일부 개정안 검토 의견’이라는 자료를 만들어 국회 법사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집중적으로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다중대표소송과 전자·서면투표, 집중투표,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 경제 민주화 관련 상법 개정안에 대한 법무부의 검토 의견을 담은 문서다.

법무부가 검토한 상법 개정안은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주장을 대거 담고 있다. 대기업 오너들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해 소수 주주권을 파격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 같은 법무부 의견은 3월 여야가 잠정 합의한 안과 비교해도 시민단체 측 주장에 더 가깝다. 당시 여야는 100% 자회사에 대한 다중대표소송과 전자투표제 의무화만 도입하고 나머지 조항은 추후 논의키로 했었다. 당시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책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이창재 법무부 차관)는 의견은 빠졌다.

정부 입장이 바뀐 것은 최근 들어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을 강하게 추진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이다. 이병태 KAIST 경영학과 교수는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갑질 파문이 결과적으로 청와대와 여권이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개입할 여지를 줬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소액주주들이 힘을 모아 경영진을 바꾸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한 법률사무소는 이날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 등 1000여 명이 모인 ‘대한항공 갑질 불법 비리 제보방’에 “주주들의 의지를 모아 대한항공 경영진을 교체하는 운동을 시작하려 한다”고 밝혔다.

좌동욱/박동휘/안대규 기자 leftking@hankyung.com